남미에서 해방자 예수와 함께 걷다

남미에서 해방자 예수와 함께 걷다

<엘 까미난떼>, 홍인식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1

I.

사람마다 사연이 많은 법이다. 더구나 베이비 부머 세대인 우리네들에게는 지금 생각해 보면 눈물겨운 사연들을 지니고 산다. 내가 홍인식 박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6년인 것 같다. 예장의 이근복 목사를 통해서 가까운 후배인데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하고 미구에즈 보니노란 유명한 분에게서 학위를 받고 목회했는데 원고를 썼으니 검토해 보란 전화였다. 호기심이 댕겼다. 당장 검토할 필요 없으니 만나서 식사나 합시다 하고 원고도 보지 않은 채 출판을 승인해 버렸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홍인식 목사가 쉽게 쓴 해방신학 이야기>다. 모두가 한물간 해방신학 책을 왜 또 내느냐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런 저평가를 받았던 그 책이 2017년 문체부가 선정하는 우수교양도서로 뽑히고, 경부선 KTX 승객용으로도 진열되는 효자 노릇을 했으니! 홍인식 박사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가는 곳마다 책 권하는 ‘권서인’이 되어 3쇄 4천부를 팔며 가난한 출판사를 도와주고서 호남의 장로교 1번지인 순천중앙교회 담임으로 갔다.

II.
순천을 몇 차례 드나들며 제안을 했다. “홍 박사님, 여러 차례 들은 개인사가 정말 구성진데 우리 신앙과지성사의 나와 예수 시리즈에다 살아온 이야기를 좀 써 주세요.” “아니, 장로님은 왜 자꾸만 내 삶을 벌거벗기려고만 하세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홍 목사님의 신앙고백적 삶은 정말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힘과 용기가 될 것이에요. 그러니 쓰세요.” 그런 강력한 요청을 홍 박사는 결국 받아들였다. 그리고 A4 400장의 보따리를 내게 내밀었다. 말년에 안정된 중견교회의 담임자가 되어 4~5년 목회하면서 홍 박사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쓴 것인데, 결국 그 교회에서 쫓겨나고 이삿짐을 싣고 서울로 올라와서 짐을 풀자마자 그 원고 보따리를 내게 가져온 것이다. “최 장로님, 여기 있어요! 최 장로님이 그토록 쓰라고 졸라댔던 내 삶의 이야기, 장로님이 죽이 되던지, 밥이 되든지 알아서 하세요. 저는 며칠간 발길 가는 대로 떠돌면서 그분께 또 다른 바람을 불게 해달라고 걷는 기도를 하렵니다!”

III.
홍 목사님께 미안했다. 원고를 읽어 가면서 점점 더 미안했다. 곱상하게 양반집 아들처럼 생긴 분이 부모에게 버려져 떠돌이가 되었는데, 그분께서는 결국 목회자로 만드시고 상처받고 찢기게 하셔서 위로의 선한 종이 되게 하셨다. 원고를 거의 반으로 줄이고 편집을 끝냈다. 마지막 실리지 못하는 원고를 아쉬워하는 홍 박사에게 나는 더 무식한 부탁을 했다. “홍 박사님, 이왕 책을 내시는 것인데 좀 더 까발려 주세요. 서문이 너무 점잖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홍 박사님은 “장로님, 저 스타벅스에 갔다 올게요.” 하더니 저자 서문을 완전히 갈아치웠다. 너무도 슬픈 사연을 담아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시발택시에 실려 엄마와 멀어져 가면서 ‘헨젤과 그레텔’을 생각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의해 숲속에 버림받은 줄 알게 된 아이들이 숲으로 가면서 조약돌을 떨어뜨려 돌아올 길을 만들어 놓았던, 달빛에 반짝이는 조약돌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무엇을 떨어뜨려야 엄마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홍 박사의 영원한 자유인의 삶이 시작된다. 4~5년 간격으로 남미를 순례하는 방황의 삶과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나 영화 같은 삶이다. 읽어보기 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적인 책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팔 걷어붙이고 써주신 한완상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떠돌이 길에서 예수를 만났기에 오늘의 홍인식 목사가 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가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예수님다운 대안적 목회를 꿈꾸며 실천하려고 했던 것은 생명과 진리에 이르는 길 자체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IV.
며칠 전 (2021. 10. 6) 공덕감리교회에서 한겨레신문과 조현 TV가 장장 5시간에 걸쳐 이 책을 중심으로 홍 박사의 삶과 신앙과 신학에 대하여 인터뷰했다. 5시간이면 비행기로 라오스쯤 갈 텐데, 조현과 홍인식 이 두 사람은 우리 시대의 이빨이 튼튼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장장 5시간 (내가 그나마 여러 차례 눈치를 주었기에 망정이지, 둘만 있었으면 족히 10시간은 떠들었을 것이다) 이야기 마라톤을 끝내고 조현 기자는 말했다. “와, 오늘을 사는 한국 기독교인의 삶의 지침서와 신앙인의 길이 여기 다 나왔네”라고. 우리는 밤 9시 가까이 소머리 곰탕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조현 기자 부부와 홍 박사와 나, 넷이서. 그 자리에서 조 기자는 나보다 한 술 더 떴다. 홍 박사의 슬픈 이야기를 몇 가지 더 빼내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아버지는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냐고 물었다. 홍 박사는 천정을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내 나이쯤 되셨을 거예요. 65세.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 죄를 대속해 주려고 네가 목사가 되었구나!” 내가 만든 책 중에서 현재까지 가장 슬프고 리얼한 책이 바로 이 책, 홍인식의 <엘 까미난떼>다. 스페인어로 걷는자란 뜻이다. 그런데 그의 떠돌이 삶은 과연 하늘의 뜻이었나?

최병천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

0 답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