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춤추라

 

사랑하며 춤추라

<사랑하며 춤추라>, 원혜영, 김장생 외, 신앙과지성사, 2018

미국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성실하게 한 사람으로 소문난 김정호 목사가 태평양을 건너와 반갑게 만날 때마다 단골 밥상의 굴비처럼 귀하게 나눈 이야기가 이 책의 기획 단초가 되었다. 김 목사는 미군 부대가 유독 많았던 의정부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이민 갔던 1.5세인데 자신은 선생님들을 잘 만나서 나름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지금은 목회에 지치고 삶의 의미가 무너져 내려도 찾아갈 선생님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김 목사는 목회 초년병 시절 곽노순, 홍근수 두 분의 목사님을 만나서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 너무나 큰 재산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뵙지는 못했지만 장인어른(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의 예수처럼 살아오신 짧은 생애에도 큰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의 진지한 “어른이 그리운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몇 번 되풀이 되었을 때 광현교회 서호석 목사가 제안했다. “그럼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어떨까?” 그게 좋겠다면서 두 사람은 크게 공감을 표하고 갔지만, 숙제는 내게 떨어졌다.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하다가 “예수의 삶을 살아낸 어른들의 이야기”를 부제로 하여 내 책상 앞에 그려진 지도는 다음과 같다.

대천덕 – 예수원에 연락하여 큰아드님에게 글을 부탁했는데, 자신은 한국말에 미숙하고 수제자 격인 양혜원 선생을 추천하여 집필.
장기려 – 인척이 없으므로 저서를 낸 지강유철 선생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집필을 의뢰함.
원경선 – 장남인 원혜영 의원에게 부탁. 쉴틈 없이 바쁘다는 것을 간신히 집필 부탁함.
김용기 – 손자인 김장생 교수에게 부탁하여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집필토록 함.
조아라 – 딸과 같은 YWCA연맹 사무총장 유성희 박사를 간곡히 청하여 집필토록 함.
나애시덕 – 양아들 격인 최종수 목사님에게 집필토록 함.
황광은 – 사위인 김정호 목사가 집필. 서문까지 씀.
권정생 – 친구인 종로서적 사장을 지낸 이철지 장로님이 고령에도 불구 투혼의 글솜씨 발휘함.
이현필 –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님께 정성을 다해 집필 부탁함.
마지막으로 전체 발문을 김기석 목사께서 흔쾌히 집필하기로 함.

워낙 유명하신 어른들의 글을 한군데 모아놓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또 그 의미를 더하려고 그분들과 가까이에 있는 분들을 집필자로 삼으려니 더욱 그러했다. 6개월이 넘게 씨름하여 원고를 받아냈다. 아홉 분의 훌륭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한 그릇에 담겨 책으로 나오니 정말 보람이 컸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 했던 분들의 삶을 담았다. 예수를 따르는 것이 실종된 채 겨우 교회 다니는 것으로 버티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책이다. 아홉 어른의 삶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책을 탄생시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김정호 목사의 서문대로 어느새 우리가 바라보고 살았던 어른들이 너무 많이 떠나셨다. 그러던 사이 뒤따라오던 후배들이 어른 노릇 제대로 못 하는 우리 세대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어른 노릇은 감당하지 못하지만, 이 책을 세상에 펴냄으로 우리를 따라오는 세대들에게 오늘의 우리를 가능하게 하신 어른들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소중한 책이다.

김기석 목사의 발문 마지막 부분이다. “세상이 어둡다.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어른들의 삶의 내력에 귀 기울이다 보면 희망이 있느냐는 물음 자체가 죄스럽게 여겨진다. 그들은 희망에 관해 묻지 않고 희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우리 앞에 별처럼 빛나는 존재로 우뚝 서 있다.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모름지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존재들이라면, 이들처럼 한번 살아보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서호석 목사와 함께 김정호 목사가 시무하는 뉴욕의 훌러싱교회로 갔다. 얼마나 많이 팔릴지는 하늘에 맡긴 채 귀한 출판기념회가 먼 곳에서 열렸다. 2018년 가을이었다. 우리 세 사람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야기했던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서평을 맡으신 조영준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목이 메어서 제대로 말씀을 전달하지 못하셨다. 이렇게 좋은 책이 나왔으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회마다 이웃마다 읽고 나누었으면 참 좋으련만.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박흥규 목사 고희기념문집, 신앙과지성사, 2008)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생각나는 분이다. 30여 년을 농촌교회에서 목회하며 60의 나이에 자원은퇴를 하고 본격적으로 대관령으로 나무를 심으며 수목신앙의 꿈을 키우시던 박흥규 목사님은 꽃피는 봄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이다. 벌써 박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7년이 된다.

박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8년 무렵이고 나에게는 감청시절이니 무척 오래되었다. 당시 나는 감청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생활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었고 그래서 사회과학 출판사였던 형성사에서 편집일을 보고 있었다. ‘감청회보’를 일간신문 크기로 격월로 발행했던 경험을 살려 출판사에 취직을 하면서 책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때 박 목사님은 40대 초반으로 김포 월곳교회를 담임했다. 공덕교회, 은강교회, 약수형제교회, 아현교회, 아현중앙교회가 감청운동의 베이스캠프였고 나는 공덕교회에서 청년부 후배들을 지도하는 교사의 입장으로 박 목사님을 찾아갔다. 학내 학생운동이 봉쇄되어 교단청년운동으로 청년 정신의 명맥을 이어가던 때다. 공덕교회 청년 30여 명을 데리고 열흘간 농촌봉사를 할 터이니 장소제공과 울타리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젊어서나 노인이 되어서나 친절한 구석이라곤 없고 표정부터도 쌀쌀했던 박 목사님은 청년들이 시골에 내려와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대상이었던 문제들도 잘 해결해 주셨지만, 저녁 늦은 토론시간에 오셔서는 청년들에게 핀잔에 가까운 말씀을 하곤 하셨다. “니들, 여기 왜 왔나?” “무슨 공부들 하냐?” “농촌교회의 현실을 말해 보라.” 등등의 말씀을 겉으로는 퉁명스러웠지만 속으로는 큰 사랑을 품고 말씀하시곤 했다.

사근사근하지 않던 박 목사님과의 첫 만남 이후 나와 박 목사님은 긴 시간을 (한 20여 년) 만나지 못하다가 송병구 목사가 독일 복흠교회에서 목회할 때 독일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10여 명이 보름간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박 목사님이 제일 어른이셨고 17년 차이가 나지만 다음이 나라서, 그와 룸메이트가 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그때 함께했던 일행들도 모두 박 목사님과 거리 두기를 하곤 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칠 때면 “야, 너 요새 무슨 책 보냐?” “공부 안 하고도 입질 잘하느냐?” “돈 벌려고 목회하냐?” 등등 까칠한 질문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는데, 나는 오지게도 보름을 한방 쓰면서 박 목사님의 까칠한 질문들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은 박 목사님이 정말 책을 사랑하고 공부를 많이 하셨다는 점이었다. 서양철학사에서부터 중세와 기독교 그리고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정말 박식한 면모를 지닌 분임을, 책벌레이심을 알게 되었다.

독일여행을 다녀온 후 박 목사님과 매우 가까워졌다. 인간적인 사귐이 있고 난 후부터 박 목사님은 동생 같은 나를 매우 존중해 주었고, 이 시대에 외롭게 출판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러면서 박 목사님은 나와 책을 통로로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대관령 숲속에서 주경야독했던 책들의 감회를 내게 전했다. 그래서 박 목사님 덕분에 나에게도 책에 대한 안목이 넓어졌고 나름 기획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이 책은 책벌레였던 박 목사님이 고희를 기념하기 위해 출판한 책으로 현재 우리 출판사에 달랑 한 권 남아있다.

“모든 것은 변화되고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머리글 제목으로 박 목사님은 자연과 영생의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번 경험했던 일들은 내 안에 존재하며, 영원한 과정에서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에서 대관령 산 생활을 기록한 일기와 관심사였던 수목신앙(樹木信仰)에 대하여 제1부를 정리했고, 제2부는 가까이 지내던 동료와 후배 16인이 인간 박흥규에 대하여 쓴 글을 모았다. 이 책 권두 대담의 진행과 정리를 내가 맡아서 박흥규 목사님의 살아온 과정을 서술해 드린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대관령 숲속에서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던 사람 박흥규 목사, 그의 빈자리가 내겐 너무 크고 넓다. 여린 가슴으로 대범한 척하셨으며, 남들이 슬슬 피하는 가시 같은 이야기로 후배들을 자극하려 했던 순전한 그분의 속내가 오히려 애처롭고도 가슴 아려온다. 이 책을 어루만지며 그가 살던 농막이 있는 대관령 옛길을 얼른 다녀와야 할 터인데… .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함께 사는 기적

 

 

(<함께 사는 기적, 프랑스 떼제와 신한열 수사 이야기>, 신한렬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7년)

1.
나도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기적이란 생각을 가끔 한다. 며칠 전 나와 가장 가까운 마나님이 출근길 운전하는 내게 심한 잔소리를 했다. 따로 다니는 게 참 편한데, 몸이 아프신고로 모셔다 드리는 출근길 한 시간이 참 길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나 이외의 사람에게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참 많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모두 떨어져 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고, 자식이든 친구든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말이 진실하게 들릴 때도 많다. 사랑으로 함께 하는 신앙공동체를 갈망한다며 수없이 기도하건만 교회 생활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데 함께 사는 기적을 일궈내는 현장이 있다. 휴가를 얻는다면 꼭 한 번쯤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참 예쁘고 아름다운 수도 공동체인데,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 떼제다. 유럽의 고풍스럽고 역사성 있는 교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아가고 있는 시점에서도 이곳은 세계 각처의 젊은이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오고 한여름에는 텐트 칠 자리도 없을 만큼 하루 3천 명 넘는 인원이 오간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단순하고 소박한 수도공동체인 이곳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찾아오는 것일까? 숙소도 여행을 위한 제반 조건도 그리 좋지 않은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왜 세계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명상하고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것일까? 이 책과 만나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신앙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2.
나는 떼제를 두 번 방문했다. 첫 번째는 20여 년 전 감리교연수원 프로그램으로 당시 이면주 목사님이 감리교 중견 목회자 십여 분과 젊은 세대로 나와, 엄일천, 정해선, 김성복, 고인이 된 김영범을 합류시켰다. 떼제는 최소 일주일은 머물 것을 권하지만 우리 일행은 한 닷새쯤 머문 것 같다. 지금은 대개 고인이 되신 목사님들과 젊은 우리는 그곳의 신선한 분위기와 자유로운 규범(하루 세 번 공동예배 외에는 프로그램도 없고 강요하는 것도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생활해야 한다)을 좋게 보는 듯하면서도 한국의 심령부흥회 등 한국적 기도원의 분위기에 젖은 나이 드신 목사님들은 적응에 힘들어하셨다.

그런데다 당시 한완상 장로님이 통일부총리가 되어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을 보이려고 하는 때라 그곳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은 대부분 이념논쟁에 시간을 소모하면서, 떼제가 추구하는 정신과 사뭇 반대되는 대화가 우리를 지배했다. 우리 일행은 한국인 수사로 서강대 학생운동의 리더로 민주화 과정에서 죽어간 박종철과 친한 친구이며 그의 죽음에 회의를 느낀 이 책의 저자 신한열 수사(이한열 열사와 이름이 같아 기억하기 좋았으나 아픈 이름이다)를 그곳에서 만났다. 지금은 60이 다된 나이이나 당시 앳된 얼굴로, 유일한 한국인 수사였다. 신 수사는 우리 일행의 양극화된 분위기를 잘 이해하면서 믿는 이들이 어떻게 땅의 소금과 화해의 누룩이 될 수 있는지를 안내했다. 또 떼제가 있어 소비와 경쟁, 분열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도 세계 곳곳에서 함께 사는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3.
나의 두 번째 방문은 존경하는 조화순 목사님을 모시고 갔다. 벌써 한 10년쯤 지난 일이다. 친구 이필완 목사가 동행하면서 조 목사님 시중을 나누어 들었다. 조 목사님 역시 이튿날까지 탐탁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하루 세 번 예배에 설교도 없고 성경 읽고 침묵하고 단순한 노래들을 기타반주에 맞춰 반복하는 것이 싱겁고, 젊은이들이 몰려들지만 구름 같은 것이고 현장성이 없어 문제라고 지적하셨다.

그런데 그 무렵 한국에 가 있던 신 수사의 배려로 3일째 되는 날 우리 일행을 수사들의 집에 초대하여 극진한 잔치로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알로이스 원장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조 목사님을 소개하고, 치하하니 조 목사님의 태도가 바뀌셨다. 또 떼제의 중심으로 예배처소인 ‘화해의 교회’에서 낮 예배가 끝난 후 알로이스 원장 수사가 조 목사님께 무릎을 꿇더니 안수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조 목사님도 흥분하셨고 신 수사가 계셨으면 일도 아니련만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통역을 감당했으니, 진땀이 나던 추억이다.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인 통역사 노릇이었다.

기분이 업된 조 목사님은 나더러 언제 그렇게 영어를 했냐 칭찬하시기에 내친김에 이웃어간에 있어 참 아름다운 소도시 끌로네로 모시고 갔다. 조 목사님과 잊을 수 없는 좋은 여행을 했다. 일주일 그곳에 머문 후 우리 일행은 독일로 향하여 존경하는 이영빈 목사님 댁을 방문했다. 김순환 사모님과 이 목사님 세 분이 부둥켜안고 울면서 만났고 헤어졌다. 3일을 함께 지낸 후 이 어른들은 우리 언제 또 만나냐? 하시며 작별하셨는데 이것이 이영빈 목사님과 조화순 목사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4.
신한열 수사의 『함께 사는 기적』,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뜻 깊게 느낀 것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이 실현된 현장이 떼제라는 점이다. 떼제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 중 유대인과 독일, 프랑스 전쟁포로들을 보호하면서 로제 수사가 시작하고 세워나간 모든 종교를 초월한 예수 사랑의 집이다. 거기에 그분의 섭리가 계셔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실망과 고뇌에 빠졌던 신한열이 로제와 만난 것은 역사 속에서 함께 사는 기적의 섭리라고 생각하여 큰 울림을 갖는다.

로제는 신한열을 신뢰하여 떼제가 소유할 수 없는(공동체든 개인이든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형제 중 누군가가 바친 큰 유산을 어떻게 쓰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신한열은 우리 북한 동포를 위해 쓰자고 제안했고 로제가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떼제의 북한 사랑의 손길이 펼쳐져서 두유 공장을 세우고 해마다 많은 양의 쌀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로제의 신뢰를 바탕으로 신한열은 유럽에서 대규모 젊은이 모임을 열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 홍콩과 중국 등 젊은이들과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5.
예수 사랑과 가난의 정신을 배경 삼아 로제 수사가 걸어온 떼제의 여정은 귀중한 것이고, 신한열이 종신서약하고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과정에서의 사랑과 회의와 희망의 이야기가 이 책을 탄생시켰다. 떼제 수사로서 책을 낸다는 것이 쉬운 결심은 아니었지만, 나의 꾸준한 제안을 수용해 준 감사의 산물이다.

이 책을 보면 참 감명 깊은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어느 단체나 새로운 또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 법. 떼제 역시 신선한 사랑과 화해를 위한 많은 일을 하였으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새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신한열은 다시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또 다시 한국에서 함께 사는 기적을 일구려고 준비 중이다. 이 책을 다시 천천히 읽으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안내하고 있는 귀한 책이다.

최병천 장로(공덕교회, 출판인)

나는 영생을 믿는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 위르겐 몰트만, 이신건 옮김, 신앙과지성사, 2020년

지난 여름 뜨거운 태양을 피해 양평에서 은퇴 후 노년의 후반전을 의미 깊게 사는 이신건 박사의 집을 찾았다. 거실 탁자 위에 독일어 원서 한권이 놓여 있었다. 까막눈인 나는 물을 수 밖에. 그랬더니, <살아있는 영혼의 죽음과 깨어남>이란 제목의 몰트만 선생님의 마지막 저서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남은 현대신학자의 마지막 책이라?

순간 상당한 의미로 다가 왔다. 이 책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곧장 번역해 달라, 올 연말에 예쁜 책으로 출판해 스터디 셀러로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원조 옥천냉면 할머니 집으로 모시고 가서 일행을 대접했다.

원고가 10월에 도착했다. 나는 책 제목을 과감하게 붙였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로! 그러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팁을 신앙과지성사가 톡톡히 주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막상 기독인과 비기독인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히기 일쑤다. 그러나 이 책 제목처럼 나는 영생을 믿는다고 하면 참 좋은 답이 될 터이다.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편집 작업에 몰두했다. 삶과 죽음은 모두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사귐이란 뒷 표지 헤드 타이틀을 찾아내곤 새벽녘에 한동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이 처형 직전 감방동료들에게 남긴 말, 죽음은 마지막이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시작이란 감동적인 문구도 추가했다. 내가 하고도 내가 스스로 감회에 젖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문학적 표현까지 더했다. “죽음의 순간에는 아마도 새로운 공간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를 부르는 생명의 외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아 평안히 이별하여라. 그리고 건강하여라” 라는 말까지 찾아냈다.

이 책은  표지 글만 읽어도 죽음에 대한 크리스천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책이 나오기가 무섭게 굴지의 언론 세군데서 동시 서평을 해주며 근래 보기 드문 책이 나왔다고 극찬했다. 책은 3주 만에 초판이 다 떨어졌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다.

역자 이신건 박사는 말한다. 오늘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하시는 분들과 실제로 죽음의 벼랑에 내몰리는 분들을 생각하면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도리어 미안하다고. 그러나 몇 년 전 부인을 먼저 보내고 95세의 노년에 죽음과 생명과 영생에 관해 깊이 묵상하며 쓰신 선생님의 글을 옮기며 마음이 많이 아려왔다고 고백했다.

어제는 참 가기 싫은 곳을 다녀왔다. 평소 이 시대 마지막 등불 같은 출판인이라며 나를 격려해 주던 친구 루터교의 주대범 장로의 빈소였다. 정의감 넘치고 인정 많고 음악가이고 목수였던 다재다능했던 친구가 갑자기 쓰러져 눈을 뜨지 못하고 세상 소풍 길을 마감했다. 소식을 접한 한 주간 동안 참 우울하고 슬펐다. 한 두어 달 쯤 되었나? 주 장로는 내게 전화해서 아쉬운 부탁을 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교우를 부탁하며 재능 있는 친구인데 생활이 어려우니 출판사에서 일 좀 시켜 달란다.

주 장로의 하소연을 들으며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주 장로의 넓은 품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빈소를 나와 한 시간 쯤을 터덜터덜 걸었다. 주 장로는 많은 사랑을 남기고 영생의 길을 먼저 갔다. 걷는 내내 그가 예수살기 모임에서 피아노치며 노래 부르던 모습만이 아른거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친구 주 장로를 먼저 보내며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만든 이 책이 더욱 더 깊게 마음속에 다가온다.

최병천 장로 (공덕교회, 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