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기독교사상 2012년 8월호
눈에 띄는 좋은 책
영적 보물을 대하는 기쁨
현대 종교학의 창시자라 불리우는 막스 뮬러(Max Muller)는 ‘종교는 그 역사를 인류와 같이 하였다’고 말했으며,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Emile Durkheim)은 ‘종교는 모든 문화의 어머니’라고 갈파했다. 인류가 생명을 영위한 모든 곳과 때마다 종교도 존재했고, 종교는 각 시대마다 문화로서 표현되어 왔다. 인간과 종교, 종교와 문화, 문화와 인간 사이는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의 2012년 상반기 인문학목회자 독서모임은 ‘종교와 인간’이란 제목으로 인문학의 중요주제를 다룬다. ‘종교’에 대한 학문적, 객관적 접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또한 인류사에 등장한 여러 종교들의 고유한 세계를 엿보며 기독교인으로서 이웃종교에 대한 건강한 시선을 견지하고, 나아가 기독교신앙이 가진 선명한 특징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글은 본인이 사역하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선교훈련원에서 올해 상반기 목회자 인문학독서모임을 열며 서울, 인천, 대전, 강릉 지역의 목회자들에게 보낸 글이다. 한국교회의 새날을 위해 교회협 선교훈련원은 3년 전부터 목회자 인문학독서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목회자들의 자기성찰, 나아가 소통,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지역사회 선교를 위하여 매달 모이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 주제가 “종교와 인간”이다. 종교학개론, 가톨릭, 정교회, 원불교, 불교 등 이웃종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정교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있는 차였다. 때마침 박찬희 교수의 『동방 정교회 이야기』가 출간되어 형제종교인 동방정교회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2013년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WCC의 30%를 구성한다는 동방정교회에 대하여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은 총회 주최국인 한국교회로서 예의가 아닐 것이다. 동방정교회를 아는 것은 세계교회를 이해하는 길이고, 형제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비추어 성찰하면 큰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정교인이 아닌 개신교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정교회 대주교인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추천사에서 “저자이신 박찬희 교수님(서울신대)은 이 흔치 않은 어려운 일을 마침내 해내셨습니다. 많은 연구 작업을 통해서 정교회의 역사, 예배, 금언, 예술, 그리고 영적 삶에 관한 중요한 주제들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라며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동방정교회 이야기’는 동방정교회의 역사와 신학, 예배와 이콘, 수도운동과 신앙인들에게 깃들어 있는 정교회의 영적 보물들을 접하는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동방정교회의 이해
정교회의 정체성과 역사
동서방교회의 분열조짐은 이미 지역분할에서 나타났다. 395년 데오도시우스 황제 사후 서방기독교권역과 동방기독교권역이 서로 다른 전통을 형성하여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지역교회들의 주요거점이 되었는데, 언어상의 상이점 또한 학문적, 신앙적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게 하였다. 교회수장이 교황이냐, 아니면 대주교 중 선임으로만 인정하느냐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심각한 불화가 되더니, 서방교회의 일방적인 ‘휄리오크베’(그리고 아들로부터) 조항은 서방과 동방교회의 분열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9세기 교황이 포티우스를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 정한 것을 거부한 것이 원인이 되어, 1054년 서로 파문장을 보냄으로 갈등의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제4차 십자군 때 서방교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한 사건은 서방을 향한 동방의 적의를 증대시켜 지금까지 분열이 지속되고 있다.
‘동방정교회’라는 명칭은 제1차 세계공의회로부터 제7차까지의 유산과 니케야신조와 칼케돈신조를 수용하는 교회를 일컫는데, 기독교정통고백의 기초에 서 있다고 하여 ‘orthodox’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동방의 교회들은 칼케돈 신조의 수용여부에 따라 콥틱정교회, 시리아정교회 등으로 나뉜다. 또한 정교회 지역교회들은 행정적으로 독립 혹은 자치를 누리고 스스로 주교를 세우는데, 전통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우선적 대우를 받아 총대주교로서 의장과 주도권을 가진다.
공의회 역사는 정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이해하는 근간이다. 동방정교회는 7개의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전승 아래서 신학과 신앙과 직제를 판단하고 적용한다. 그것은 기독교 전체의 공의회였고 위대한 교부들이 이끌었기 때문이다. 비록 공의회가 황제들에 의해 소집되고 주도되었지만, 거의 모든 지역 교구에서 온 교부들의 공헌으로 인하여 공의회를 정치적인 사건이 아닌 교회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정교회는 교부들이 정통신앙을 수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사도적 신앙을 잇고 있다고 보고 이들을 전폭적으로 존승한다.
공의회에 근간을 두고 있는 정교회는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 참여하여 주요회원교단으로서 다양한 교파들과 교류 및 대화하고 있다. 정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개최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공식참관단을 보냈고, 1965년 공의회의 마지막에 동방과 서방의 분열을 가져온 서로의 파문을 취소했다. 양교회의 교류는 2000년대에 들어와 활발해져 이제는 신학적 대화의 영향이 사목 현장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한국정교회의 역사는 1900년 1월, 러시아의 흐리산토스 세헷코프스키 수사 신부가 들어와 예배를 집례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러시아에 호의적이었던 고종황제의 허가로 성 니콜라스 성당이 세워지고 선교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으로 조선정교회는 수난 받았고, 한국전쟁 때는 김의한 신부가 납북되는 수난을 겪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리스에서 종군사제로 알드레아스 할끼오뿔로스 수사를 파견하는 등 여러 지원을 해줌으로써 한국정교회 신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968년 그리스정교회의 도움을 받던 한국정교회는 뉴질랜드 대교구에 속하게 되고, 1968년 마포구에 니콜라스 성당을 신축하여 한국정교회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2004년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주교를 대교구장으로 하는 대주교착좌식을 거행하였고, 2008년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프스 대주교가 한국의 대주교로 선출되어 약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정교회는 13곳 성당과 두곳의 수도원이 있고 3,500명의 신자가 신앙생활하고 있다. 199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한 한국정교회는 한때 행정보류 상태에 있다가 작년부터 정회원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신학
정교회의 신학적인 특성은 ‘테오시스’인데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영역으로 고양되는 것, 즉 사람이 신화(神化)되는 것이다. 신화사상은 중생한 자가 전생애를 걸쳐 계속 성화되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하였고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가야 한다고 보았다. 정교회는 이 신화사상을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심(하강)으로 인간에게 상승의 길을 열어놓으셨기에 피조물과 인간이 연합되는 전망을 보여주었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신화의 예표이며 보장이라는 입장이다.
정교회는 상징이 사라지면 관념적 신앙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보는데, 그 상징의 중심에 이콘이 있다. 이콘은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상징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여주며 실체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정교회가 100년이 넘도록 성화파괴시대에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성화를 보호한 것은 성화가 진정한 영적지도를 제공해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교인들은 성화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신화(神化)된 원형의 형상인 성화를 통해 영적 세계의 비전을 받는다고 본다. 이 성화신학의 바탕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자리잡고 있다.
정교회는 ‘이코노스타시스’(성화대)를 교회제단의 전면에 놓는데, 이 안쪽은 봉헌의식을 위한 공간이고 지성소와 성도들의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정교회는 성경, 공의회, 교부들, 성만찬예배, 교회법, 성화들이 분리되거나 대립하지 않다고 여기는데, 이는 이 모두가 동일한 성령의 역사로 보기 때문이다. 정교회의 예배당 구조와 이콘들, 그리고 예배 전체는 천상과 지상의 예배가 만나는 자리로 본다.
예배
저자는 동방정교회의 신학을 가장 적절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예배라고 본다. 정교회는 풍부하고 아름답고 전례적이고 위엄과 품위를 갖춘 예배의식과 성화상과 각종 상징들을 가지고 있다. 예배는 준비의식, 기도, 말씀의 예전, 희생의 예전(성만찬예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준비의식은 제대의 왼편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 성찬예배는 정교회 신앙생활의 기본으로 성찬이 거행될 때마다 공의회적 본질이 표현된다고 본다.
서방교회에서 부르는 미사 대신에 ‘성찬예배’라고 부르고 회중에게 빵과 포도주를 모두 제공하며, 성만찬 요소에 대한 이해는 ‘성령임재설’에 가깝다. 성찬예배의 특징은 성화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공동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성인들, 천사들, 마리아와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우주적 예배로 간주한다. 예배에서 교회음악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신앙고백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고백하며 사도신경은 존중하지만 니케야 신조와 동일한 권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예전적 관습으로 십자성호 긋기, 이콘에 절하고 입맞추기가 있으며 예수기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정교회는 개신교와 같이 39권을 성서로 사용하며, 에즈라, 토빗, 유딧 등 10권을 제2의 성서로 사용하고 있다. 정교회는 율리우스력의 사용으로 성탄절을 1월 6일로 지키고 있다.
정교회 수도운동과 인물들
기독교 수도운동은 기독교신앙이 허용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엄격하고 긴장된 믿음생활,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중보자, 삶의 순교를 열망하는 이들이 수도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들은 사회와 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으며 칠십인역 성서도 이들을 통하여 번역되었다. 안토니는 기독교 수도운동의 아버지이고 파코미우스는 은둔수도에서 공동체 수도운동으로 발달시키는데 기여하여 공동체 규율을 만들었다. 저자는 성당의 건축양식의 의미를 ‘소피아 성당’ 등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정교회 수도운동의 메카인 아토스 수도원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한 신앙의 선구자들과 순교자들은 존재 자체로 교회와 역사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데, 신앙적으로 배워야 할 점이 많았다. 특히 순교자들을 통해 기독교신앙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상호발전을 위하여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라깡(Jacques Lacan)은 ‘거울이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네가 필요한 이유는 나는 너를 통해 나를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본질과 공공성을 놓치고 외적인 성장과 성공주의에 매여 사회적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전통적인 정교회를 거울로 삼아 반성적인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정교회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조심스럽게 보존하며 신앙의 신조에 포함돼 있는 신조들을 손상 없이 지켜 내려오는 교리에 대한 진정한 해설자이다”(좬정교회를 알고 계십니까좭 정교회출판사)라는 정교회의 긍지를 존중하면 충분한 거울이 될 것이다.
교회일치운동에서 사회활동보다는 신학적 성찰에 더 중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신학적 공동기반이 튼튼할 때 대화와 협력에 진전이 있다는 차원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신학주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점에서 신적 삶의 참여를 통하여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정교회의 테오시스(神化)사상과 개신교의 성화사상은 공유점이 많은바, 성화사상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고양시키는데 신화사상에서 배울 바가 많다. 교회협 선교훈련원은 사회적 성화에 대하여 3년간에 걸쳐 ‘에큐메니칼 신대원연합 학술제’를 하였다. 2009년에는 장신대에서 ‘칼빈의 사회적 성화’, 2010년에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 2011년에는 한신대에서 ‘사회적 영성과 민중신학’이란 제목으로 신학자들과 신대원생들이 모여 학술제를 하며 심도 깊은 토론을 하였다. 신학적 토론이 깊어지면 우리나라 정치, 사회, 문화, 통일, 환경 등의 분야에서 예언자 정신으로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저자는 개신교회와 교인들 안에서 수많은 상징과 관습이 부당하게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며 특히 십자성호의 회복을 중시하는데 동감이 간다. 동방정교회의 상징과 관습이 개신교인들이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건강한 생활신앙으로 나아가는 길에 도움 되지 않을까!
저자가 공의회 결정과정에 교부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하면서도, 당대 황제나 권력의 개입으로 인하여 순수성을 상실하기도 하였다고 지적하는데, 상호 배치되는 내용이 있는 만큼 보다 치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정교회의 공의회에 기초한 교회론에 대하여 더 깊이있게 고찰하면, 한국교회가 새롭게 나아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동방정교회의 유구한 역사와 방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연구하여 좋은 책을 저술한 박찬희 박사의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
이근복/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했으며,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근총무와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새민족교회에서 목회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