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타임즈] “베다니 예수와의 만남이 우리에게도 이뤄지기를”, 「베다니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곽주환 지음
곽주환 목사(베다니교회)가 성서 속 베다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중심으로 삼은 신앙칼럼 「베다니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를 펴냈다. 가한나 기자 hanna@kmctimes.com |
곽주환 목사(베다니교회)가 성서 속 베다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중심으로 삼은 신앙칼럼 「베다니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를 펴냈다. 가한나 기자 hanna@kmctimes.com |
감신대 심광섭 박사의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사상을 통틀어 유기적으로 연구 한 방대한 역작. |
몰트만 지음 이신건 옮김 유석성 추천 10,000원 신앙과지성사
하나님은 희망이다! 『위르겐 몰트만 묵상 40』을 발간하며 / 이신건
혜성은 대개 산산이 조각난 돌멩이를 여기저기 흩뿌리고는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몰트만의 신학은 우리의 가슴 속에 거대한 운석을 여기저기 마구… 뿌려 놓았다. 그가 뿌려놓은 신학의 운석은 우리가 잘 풀지 못하던 수수께끼를 시원하게 풀어 주었고, 어디로 갈지를 몰라 허둥대던 우리의 발길을 다시금 미래의 희망으로 향하도록 강력하게 이끌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몰트만이 심어놓은 수많은 운석들은 크기와 모양과 성질이 너무도 달라서, 전문가가 아니면 이제는 도저히 제대로 맛보기 어려워졌다. 가난한 학도들은 그 많은 운석의 조각을 구입하기도 벅차졌다. 어쩌면 좋으랴? 그래서 고민 끝에 필자는 몰트만 신학의 중요한 핵심을 적당히 골라내어 이를 주제 별로 정리하여, 독자들이 더 쉽게, 더 부담 없이 읽도록 작은 책을 만들어 보았다.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책의 내용은커녕 목차와 심지어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책 속의 내용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발로”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책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데 말이다. 작은 고추처럼 이 책은 매우 맵고 달콤하니, 내 말을 믿고 한번 먹어보시라니까요!
머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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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돈 봉투 만드는 곳인가… 루터가 다시 태어난다면 교회 개혁 위해 또 기도할 것” 마르틴 루터(1483∼1546)가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당시 교회는 제후, 귀족, 상인 등의 신분별 가격표에 따라 면죄부를 판매했다. 지옥에 간 자를 위한 면죄부도 있었다. 교회의 부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면죄부 판매에 대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구교인 가톨릭교회로부터 신교가 나오게 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의 정신’을 담고 있다. 반박문 발표일이 개신교의 종교개혁기념일이 된 이유다.종교개혁 498주년을 맞아 ‘교회 개혁’을 강조했던 한 장로의 일기를 30일 들춰봤다. 평생 교육자로 산 고 류제경(1917∼2012·사진) 장로는 1939년부터 약 70년 동안 114권, 2만1516쪽의 일기를 남겼다. 루터와 같이 교회 개혁의 꿈을 품고, 철저한 회개 운동을 주창했던 그는 ‘루터가 다시 태어난다면 교회 개혁을 위해 다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일제 강점기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동했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류관순 열사가 그의 5촌 당고모이다. 류 장로의 조부 류중무와 종조부 류중권, 류중권의 딸 류관순, 고모인 류예도가 모두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종조부는 만세운동 중 숨졌고 조부는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류관순은 고문을 받다 옥중에서 순국했다. 류 장로는 교사였던 부친 류경석 장로와 첫 여성 경찰서장을 역임한 어머니 노마리아 장로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교회가 돈 봉투 만들어 내는 곳 돼서야…” 그는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 초청하는 잔칫집” 그는 어떤 교회를 꿈꾸었을까.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며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 초청한다. 그들이 그 잔칫집을 채운다. 먼저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은 그들을 기쁨으로 섬긴다. 참된 교회는 잔칫집 같아야 한다.”(2008년)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
오늘의 크리스천들은 현대 세계의 문제들에 대해 복음과 성서를 기반으로 고민하고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시점에 서 있다. 개신교 선교 130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는 이제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의 단계를 넘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러한 시대적 소명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불확실 하지 않을까. 상당수 전문가들이 아마도 지금 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297903&code=23111312&cp=zu |
16개 주제에 관한 진지한 성찰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
“류제경 장로의 고뇌에 찬 일기는 이 시대 한국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한 튼튼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덕주 교수(감신대)는 그 귀한 일기책과 그 저자를 현장에서 직접 보았을 때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류제경 장로는 류관순의 조카이자 그 유명한 1919년 천안 아우네장터 만세시위 지도자이자 감리교 전도사인 류중무의 손자다. 그의 어머니 노마리아는 김구의 총애를 받았던 우리나라 여성경찰서장 1호이다. 류관순 집안에서만 9명이 독립운동으로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유관순이 이화학당 재학시절 어린 조카를 위해 만들어준 털실 모자가 백석대학 류관순 연구소에 있다.
2012년에 95세의 일기로 소천한 류 장로는 2008년 7월 23일부터 9월 7일까지 47회에 걸쳐 “걷기운동”이란 제목 하에 자신의 살아온 90년 일생을 요약, 정리했는데 이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류 장로 1주기에 책으로 낸 바 있다.
류 장로의 방대한 분량의 일기를 정리한 이는 최태육 박사(감신대 강사)와 김승남 목사(이천 장천교회)다. 특히 최태육 박사는 2년동안 류 장로의 생애와 그가 남긴 일기 자료를 분석하는 논문까지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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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세워야 할 서른(而立)에 철없는 시골 전도사, 부목사, 첫 담임목사로 뒤뚱거리며 걸어왔습니다. 스스로 의심치 말아야 할 사십(不惑)에 매사 흔들리며 조심조심하며 사역했습니다. 하늘 뜻을 깨닫는다는 오십(知天命)에 자기 정체성과 사명의 본질을 붙잡고 험한 파도를 헤쳐 나왔습니다. 나이 육십(耳順)이 되었는데도 자꾸 남의 말이 귀에 거슬려 걱정입니다. 줄포중앙교회를 담임던 그 시절, 그는 전주의 호성신학교 학생들에게 큰 가르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분의 강의시간이 다가오면 동기생들은 무척이나 고대하고 또 고대했었죠. ‘수정’이나 ‘연화’는 마치 수줍은 새색시처럼 그분을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늘 성심성의껏 강의를 준비해 오는 열정도, 만두에 들어 있는 속처럼 풍성한 강의 내용도, 강의 때마다 사용하는 언어들은 마치 고운 시를 써내려가는 것 같았죠. 그야말로 어머니가 끓여 주던 하얀 떡국처럼 달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박순영 목사의 회갑(回甲) 기념집 <지는 해가 아름다운 곳>에 나오는 글귀죠. 30대에 서해 변산반도의 줄포에서 바라본 석양의 노을처럼 인생을 아름답게 갈무리하고픈 마음을 내비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만난 좋은 스승들, 동역자들, 친구들, 사랑스런 성도들, 기도와 신뢰로 두 팔을 붙들어 준 장로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엠마오 길목의 석양을 바라보며 함께해 준 ‘따뜻한 동행자’들이라고 고백하죠. 이분의 감성 에세이집을 읽고 있자니, 요즘 새벽기도회 때 보고 있는 사무엘하 5장∼11장의 다윗이 떠오릅니다. 사무엘하 5장에서 다윗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왕이 되는데 그의 나이 37살 때의 일이었죠. 다윗은 6장에서 40년 가까이 기럇여아림, 곧 ‘바알레유다’에 머물던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고, 7장에서 법궤를 모실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이 성전을 지을 것이고, 대신 그의 시대에는 평안함과 함께 그의 왕위를 영원토록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죠. 하나님은 8장에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승리케 해 주셨죠. 그래서 다윗이 9장에서 사울 집안의 남은 자손인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고, 10장에서 군대의 총사령관 요압 장군이 거느린 군사가 암몬 왕 하눈이 거느린 용병 3만 3,000명을 격파하죠. 그런데 11장에 이르러 다윗은 엉뚱한 죄악을 저지르고 말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게 그것이죠. 그뿐 아니라 그녀가 임신하자 그걸 덮으려고 그녀의 남편을 불러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했죠.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았던지 결국 그 남편을 전선의 최전방에 보내 적의 칼에 죽게 했죠. 다윗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한 밧세바를,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이 자기 아내로 삼고 말죠. 교회의 힘은 세속의 힘처럼 크기와 숫자에 있는 게 아니라 깨끗함에 있다고 여기는 박순영 목사. 박 목사는 오늘도 그런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남은 인생을 다함없이 바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바다에서, 동해의 젊음을 지나 남해의 풍요를 이웃과 함께 나누다가 서해의 노을처럼 수평선 너머로 평안히 사라지길 바라는 그의 바람처럼, 그의 남은 인생이 더욱더 아름답게 노을지길 소망합니다. 샬롬.
권성권 기자 (littlechrist12@hanmail.net) |
독서는 나를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것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도 옛말이 되어 가고 있다. 독서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과 영화, 게임 등 영상에 익숙한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책이좋은사람들’은 그 고민을 안고 지난 2011년 설립됐다. 즉, 기독교 신앙 안에서 젊은이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다져갈 수 있도록 돕는 모임이다. 다음세대에게 책 속의 길을 선물하다
◇ 왼쪽부터 축도하고 있는 이천진 목사, 책이좋은사람들 상임이사 최병천 장로, 축하 공연 중인 심상종 교수, 판소리를 선보이는 정윤형 선생, 한양학원 김종량 이사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 <왜 눈떠야 할까> 김신일, 민영진, 이만열 외 16명 지음 / 이덕주 이필완 장석근 이천진 박정인 홍이표 홍승표 기획 / 신앙과지성사 펴냄 / 335쪽 / 15,000원
이 세상에서 제일 겁없는 동물은 ‘하룻 강아지’라고 한다. 호랑이나 사자를 만나도 떨지 않는다. 태어난 지 고작 하루이니 도대체 뭘 알아야 떨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그런데 그보다 더욱 용감한 존재가 있다고 한다. 바로 ‘눈먼 사람’이다. 이번에는 눈에 뵈는 게 없으니 겁날 것이 없단다. ‘본 회퍼’ 목사의 옥중서간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것,내가 매맞는 것,내가 죽는 것, 이것이 그리 심한 고통은 아니다. 나를 참으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다. 그들은 정확한 진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댓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도시가 초토화하고, 꽃다운 젊은이들이 총알받이가 되고, 무고한 노약자와 아이들이 굶주렸고, 나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빚더미에 주저 앉았다. 북극의 얼음이 좀 녹든 말든 그게 내 가족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지지리 못 살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여지없이 부자당에 몰표를 주는 사람들, 언론의 자유가 막장 수준으로 뒷걸음쳐도 경제성장률만 따지고 있는 사람들, 북한 주민의 고난을 보면서 인권만 따지고 있는 사람들, 교회 갱신을 위한 비판을 교회 공격으로 매도하는 사람들, 목사도 우리처럼 연약한 인간이니 횡령해도 그냥 두자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새끼는 끔찍이 위하면서도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는 누가 굶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과연 누가 이들의 눈을 멀게 했을까. 주객이 바뀌고,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고, 가짜가 진짜를 핍박하고, 짝퉁이 진품을 대신하고, 성직자가 부자인 사회는 슬픈 사회이다. 탐욕이 자연을 파괴하는 세상, 돈이 의를 멸시하는 세상, 권력이 진리를 조롱하는 세상,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약탈하는 세상, 그리고 있는 놈들이 더 무서운 세상 그것은 결코 기독교인이 추구하는 세상이 아니다. 떡 9개를 한 놈이 다 먹고, 남은 떡 1개를 아홉 사람이 나누어야 하는 사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세상이다. 그럼에도 배부른 지도자는 거짓을 말하고, 눈먼 선지자는 평안을 노래하고, 그리고 무능한 장로와 안일한 집사는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백성의 상처를 위로하지 못 하니 오락과 스포츠와 드라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정의이고 섬김인지 교회는 보여주지 못 했고, 어떤 설교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아 고작 만사형통과 만수무강만 늘어놓고 있다. 그러니 이래도 교회가 쇠하지 않고 교인이 줄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기적이다. 왜 잠만 자는가. 이제 눈을 떠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신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라고 분명히 증거했다.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저 높히 구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역사하는 곳에 임재한다. 따라서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단지 율법책과 교회당 속에만 가두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중세적 세계관일 뿐이다. 그런데 제 아무리 용맹해도 ‘돈키호테’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먼저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잠만 계속 자면 결국은 누군가에게 속게 되는 법이다. 이제 눈을 크게 뜨고, 성경을 보고, 하늘을 보고, 세상을 보고, 그리고 역사 속에 장엄하게 흐르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보고 직접 그 잔치에 참여하여 놀라운 감동을 함께 누리자. 지금 내가 실존하고 있는 이 시대의 주인공은 아브라함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다윗도 아니고, 베드로도 아니고, 또한 담임목사님도 아니다. 내 인생의 주연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