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신학연구소와 신앙과지성사는 존 웨슬리 저널을 출간하고 기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웨슬리신학연구소 소장 김영선 박사는 “웨슬리 자신이 직접 기록한 목회, 삶, 신학 등을 상세히 기록한 책”이라며 “웨슬리 연구자들이 감리교의 유산과 전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5권으로 구성된 존 웨슬리 저널은 번역 기간 5년간, 23명의신학자들이 함께 번역한 책으로 광림교회 김선도 감독과 일산광림교회 박동찬 목사가 함께 지원했습니다. INT) 박동찬 목사 / 일산광림교회 https://www.cts.tv/news/view?ncate=THMNWS01&dpid=26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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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94세 신학자 “내 묘비명엔 사망 아닌 부활 날짜 새길것”
/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獨 94세 신학자 “내 묘비명엔 사망 아닌 부활 날짜 새길것”
몰트만 책 ‘나는 영생을 믿는다’ 제자 이신건씨가 번역해 출간
올해 94세 노(老)신학자가 제자에게 물었다. “내 비석에 무슨 글을 새길지 아느냐.” “출생일과 사망일이겠죠.” “아니, 출생과 부활의 날짜다. 내가 죽은 날에 나는 부활할 것이다.”
독일의 저명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작년 한국을 찾았을 때 제자 이신건과 나눈 대화다. 최근 이씨의 번역으로 출간된 ‘나는 영생을 믿는다’(신앙과지성사)는 노신학자의 삶과 신앙, 신학이 녹아있다.
몰트만 박사의 일생은 20세기 독일 현대사와 겹친다. 청년 땐 나치에 징병돼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영국군 포로 생활도 했다. 진정한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스코틀랜드의 포로수용소에서였다고 한다. 종전 후 괴팅엔대 신학부로 진학해 개신교 신학을 전공했다. 국내에도 ‘희망의 신학’ 등 저서가 소개됐다.
스스로 ‘마지막 책이 될 것’이라고 밝힌 ‘나는 영생…’에선 90대에 접어들어 상처(喪妻)한 후 느끼는 쓸쓸함도 감추지 않는다. “나의 아내 엘리자베트가 2016년에 사망한 이래 나의 관점은 바뀌었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나에게 개인적인 문제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또 책을 쓴 목적을 ‘죽음의 기술’이 아니라 ‘부활의 기술’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죽음의 기술은 우리가 오직 한 번만 실천할 수 있지만, 부활의 기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항상 실천할 수 있다”고 적었다.
책은 예수 부활 사건을 중심으로 ‘죽음 후에도 생명은 존재하는가?’ ‘영원한 생명: 우리는 무엇에 대해 질문하는가?’ ‘우리는 죽는 순간에 부활할 것이다’ ‘살아있는 영혼의 죽음과 깨어남’ 등으로 이어지며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시간의 매 순간은 미래의 시작이다. 그리고 과거는 원래 지나간 미래다. 출생이 죽음보다 앞서듯이, 미래는 과거보다 앞선다’ ‘영원한 안식은 영원한 죽음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등 잠언 같은 구절도 즐비하다.
몰트만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조상 숭배는 뒤를 향해 ‘시조(始祖)’들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앞을 향해 죽은 자들의 부활과 하나님의 미래 세계의 생명을 지시한다”며 “이 미래의 희망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김한수 기자
老신학자가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한 메시지는…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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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생을 믿는다/위르겐 몰트만 지음/이신건 옮김/신앙과지성사
‘희망의 신학자’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 위르겐 몰트만(94) 박사가 전 세계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자 한 이야기는 ‘영생’이었다. 몰트만 박사는 최근 스스로 “내 마지막 저서”로 명명한 책 ‘나는 영생을 믿는다’(신앙과지성사)를 펴냈다. 20세기 후반 현대신학계를 개척한 인물로 꼽히는 몰트만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사회에 팽배했던 ‘실존주의 신학’ 대신 ‘희망의 신학’을 주창해 주목을 받았다.
그가 죽음과 영생, 부활을 깊게 성찰한 이 책을 펴낸 계기는 2016년 아내의 별세였다. 책은 자신처럼 가족 친지 등의 죽음을 맞은 이들에게 부활의 희망과 확신을 전하기 위해 썼다. 학술적 논문은 아니지만, 그간 주창해온 신학이론이 녹아있다. 그 역시 고령이기에 죽음을 신학적으로 고찰한 이번 작업이 각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몰트만 박사는 “보이는 이 세계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세계에 죽은 자들이 존재해 있다고 믿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후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개인의 부활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날 사건으로 인식했다. 다만 부활의 형태에 있어선 예수와 다를 거라고 봤다. 예수는 그의 무덤에서 육체로 부활했으나, 인간은 죽는 순간 영생으로 부활한다는 게 몰트만 박사의 견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낱알이 땅에서 썩어야 꽃이나 나무를 피워내듯이 우리의 신체 역시 죽음을 거쳐 썩지 않은 영생을 얻는다. 독일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역시 이런 영생의 소망을 품었다. 본회퍼 목사는 1945년 4월 9일 플로센부르크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당하기 직전 동료 수감자에게 “이것이 마지막이지만, 내게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는 “우리가 ‘영혼의 어두운 밤’이나 육신의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 곁에 계신다. 그리스도는 겟세마네와 골고다 사이에서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저주의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며 “그리스도의 지옥행 이래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곳에도 희망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 핵전쟁, 기후위기 등 제2차 세계대전부터 지금껏 불거진 인류의 악을 열거한 뒤 “하나님의 아들은 모든 버림받은 사람들과 연대한다”며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부활을 고대한다.
“인생은 온통 허무할 뿐이고, 죽음 후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도 오직 허무가 아닌가. 그러나 몰트만은 외친다. ‘아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해도, 희망만은 포기하지 말자!’”
몰트만 박사의 제자로 이 책을 번역한 이신건 목사의 헌사다. 코로나19 시대에 죽음과 절망으로 쓰러진 인류에게 보내는 노신학자의 마지막 당부같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7864&code=23111312&cp=nv
손정도 장손 손명원 장로, 감신대에 『손정도』전기 1600권 기증 감신대, 1찬만원 고료 ‘『손정도』독후감 대회 개최
/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 감신대가 ‘『손정도』전기를 기증한 손정도 목사의 장손 손명원 장로에게 15일 감사패를 전달했다. 좌로부터 이후정 총장, 손명원 장로 신앙과지성사 최병천 장로, 이현주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가 손정도 목사의 전기를 담은 책 ‘『손정도』 – 자유와 평화의 꿈(이덕주 지음)’ 1600권을 학교에 기증한 손명원 장로(79세)와 책을 펴낸 신앙과지성사 최병천 장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손명원 장로는 해석 손정도 목사의 장손이자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며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이다. 현대중공업 부사장, 현대미포조선 사장, 쌍용자동차 사장, 맥슨전자 사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손컨설팅컴퍼니의 대표이사를 맡는 등 경영인의 삶을 살았다.
감신대는 손명원 장로가 기증한 책을 전교생들에게 나눠주고 독후감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후정 총장은 “감신대 학생들이 이 기회를 통해 손정도 목사님의 생애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갔던 손정도 목사님처럼 감신의 모든 학생들이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감신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손정도』전기 독후감 대회는 오는 21일부터 10월 10일까지 응모 할 수 있다. 우수상(자유와 평화상) 1명에게 3백만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등 총 1천만원 상당의 상금과 응모한 모든 학생에게 신앙과지성사가 발간한 3만원 규모의 도서를 지급한다.
손명원 장로도 “이번 독후감 대회를 통해서 학생들이 손정도 목사의 삶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분의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 그리고 걸레정신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손명원 장로
해석 손정도(1882~1931)
상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는 그 활동 반경이 실로 광대하였다. 국내에서는 출생지 강서에서 출발해서 평양, 서울을 거쳐 ‘가츠라암살음모사건’으로 1년 유배 생활을 했던 전라도 진도까지 2천 리 길이었다. 그는 예수를 믿고 부모와 고향에서 쫓겨난 이후 ‘27년 공생애’의 반 이상(15년)을 해외에서 살았다. 중국 남방 상해에서 북경과 산해관을 거쳐 북방 갈림과 하얼빈까지 1만 리 길이었다.
그는 그렇게 광활한 지역을 누비면서 목사로만 산 것이 아니라 선교사로,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은 도산 안창호와 우남 이승만을 비롯해서 전덕기, 양기탁, 이동휘, 이시영, 이동녕, 안태국, 김규식, 여운형, 김구, 노백린, 신규식, 현순, 하란사, 기마리아, 김활란, 유관순 등 그야말로 한국 독립운동사와 근대사의 주역들로 교과서에서 읽었던 인물들이었다.
손정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족의 투쟁 또한 눈물겨웠다. 삼일운동 때 평양에 있던 부인과 자녀들도 모두 만세시위에 가담했고 어머니(오신도)와 맏딸(손진실)과 함께 평양 애국부인회를 조직해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손정도의 두 아들(손원일과 소원태) 역시 일제말기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손정도는 북만주 길림에서 목회할 때 ‘숭실 동문’ 김형직의 아들 김성주(김일성)를 친자식처럼 돌봐준 일이 있었다. 그 일로 김일성은 손정도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렇게 해서 손정도는 ‘남과 북에서 공히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처럼 손정도는 그 인맥과 활동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는 백두대간처럼 응대하였다.(이덕주 교수의 『손정도』 머리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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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가 손정도 목사의 전기를 담은 책 ‘『손정도』 – 자유와 평화의 꿈(이덕주 지음)’ 1600권을 학교에 기증한 손명원 장로(79세)와 책을 펴낸 신앙과지성사 최병천 장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손명원 장로는 해석 손정도 목사의 장손이자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며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이다. 현대중공업 부사장, 현대미포조선 사장, 쌍용자동차 사장, 맥슨전자 사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손컨설팅컴퍼니의 대표이사를 맡는 등 경영인의 삶을 살았다.
감신대는 손명원 장로가 기증한 책을 전교생들에게 나눠주고 독후감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후정 총장은 “감신대 학생들이 이 기회를 통해 손정도 목사님의 생애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갔던 손정도 목사님처럼 감신의 모든 학생들이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감신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손정도』전기 독후감 대회는 오는 21일부터 10월 10일까지 응모 할 수 있다. 우수상(자유와 평화상) 1명에게 3백만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등 총 1천만원 상당의 상금과 응모한 모든 학생에게 신앙과지성사가 발간한 3만원 규모의 도서를 지급한다.
손명원 장로도 “이번 독후감 대회를 통해서 학생들이 손정도 목사의 삶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분의 하나님 사랑 나라사랑, 그리고 걸레정신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손명원 장로
해석 손정도(1882~1931)
상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는 그 활동 반경이 실로 광대하였다. 국내에서는 출생지 강서에서 출발해서 평양, 서울을 거쳐 ‘가츠라암살음모사건’으로 1년 유배 생활을 했던 전라도 진도까지 2천 리 길이었다. 그는 예수를 믿고 부모와 고향에서 쫓겨난 이후 ‘27년 공생애’의 반 이상(15년)을 해외에서 살았다. 중국 남방 상해에서 북경과 산해관을 거쳐 북방 갈림과 하얼빈까지 1만 리 길이었다.
그는 그렇게 광활한 지역을 누비면서 목사로만 산 것이 아니라 선교사로,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은 도산 안창호와 우남 이승만을 비롯해서 전덕기, 양기탁, 이동휘, 이시영, 이동녕, 안태국, 김규식, 여운형, 김구, 노백린, 신규식, 현순, 하란사, 기마리아, 김활란, 유관순 등 그야말로 한국 독립운동사와 근대사의 주역들로 교과서에서 읽었던 인물들이었다.
손정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족의 투쟁 또한 눈물겨웠다. 삼일운동 때 평양에 있던 부인과 자녀들도 모두 만세시위에 가담했고 어머니(오신도)와 맏딸(손진실)과 함께 평양 애국부인회를 조직해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손정도의 두 아들(손원일과 소원태) 역시 일제말기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손정도는 북만주 길림에서 목회할 때 ‘숭실 동문’ 김형직의 아들 김성주(김일성)를 친자식처럼 돌봐준 일이 있었다. 그 일로 김일성은 손정도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렇게 해서 손정도는 ‘남과 북에서 공히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처럼 손정도는 그 인맥과 활동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반도를 관통하고 있는 백두대간처럼 응대하였다.(이덕주 교수의 『손정도』 머리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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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도』 – 자유와 평화의 꿈
감리교신학대학교 독후감 대회
/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감리교신학대학교 독후감 대회
『손정도-자유와 평화의 꿈』
이덕주 지음. 밀알북스(신앙과지성사)발행
대상: 감리교신학대학교 학부.대학원생
기간: 2020년 9월 21일~10월 10일까지
문의: 감신대도서관(01-3619~232,233)
#감리교신학대학교독후감대회 #손정도 #밀알북수(신앙과지성사) #이덕주교수
존 웨슬리 저널-전5권
/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존 웨슬리 저널 출판 기자 간담회
유영모의 귀일신학-이정배
/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이정배 지음, 『유영모柳永模의 귀일신학歸一神學: 팬데믹 이후 시대를 위한 다석강의』 다시 읽기』를 읽고
– 팬데믹 이후 시대 우리는 왜 다석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 임종수(한국예술종합학교)
- 이 책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대단히 저어되는 일입니다. 제가 다석 유영모의 사상을 잘 알지 못하기에 글을 쓸 만한 적임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학대학 시절 김흥호 선생님의 강의 사이로 다석사상의 흔 적을 조금 엿보고, 선생님이 풀이한 제소리』를 일독한 후 『다석강의』를 읽은 정도에 불과함을 먼저 고백합니다.
- 그러한 무지의 부끄러움을 안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조금은 그 무지를 면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물론 부끄러움은 여전합니다. 다석사상에 대한 무지의 부끄러움과 책을 읽는 동안 겪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자의 『유영모柳永模의 귀일신학歸一神學』을 읽고나서야 다석사상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동안 다석사상을 가까이 하지 못했을까 자문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석의 한국어가 제게는 잘 읽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그의 한국어는 너무 어려웠습니다.(물론 저는 언어란 단순히 사상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의 사상에 가장 어울리는 언어를 찾기 위해 다석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석사상에 대한 오랜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저자가 다석의 난해한 한국어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며 다석사상의 알짬을 신학과 종교의 영역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으로 읽어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석사상이 학문의 대상을 넘어, 사람의 속알(본성)에 대한 자각과 일상 속의 영성을 일깨우는 사상임을 이 책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저는 “『다석강의』를 재독하며 학문연구의 대상으로서만 아니라 다석이 붙들고 씨름해야 할 영성의 사람으로 다가왔던 까닭”이라 집필의 뜻을 밝힌 저자의 말에 깊이 공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자는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빈탕한데 맞혀놀이-다석으로 세상을 읽다』를 통해 다석사상을 종교와 신학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왔기에 이 책 역시 앞 두 책의 연속선상에서 읽힙니다. 하나 이 책은 이전의 책들과 성격이 사뭇 다르기도 합니다. 저자가 『다석강의』를 읽는 내내 “직업적 종교인(신학자)이 아닌 신앙인, 구도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기 위한 갈급한 상태에서”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수행한 성찰록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 그래선지 저는 저자의 『유영모의 귀일신학』이 ‘팬데믹 이후 시대를 위한 『다석강의』 다시 읽기’라는 부제를 단 것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기 위해 갈급해야 할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한 시대에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는 동안, 이러한 시대에 일상인으로서 다석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왜 우리는 다석의 사상을 조명하고 읽어야 하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경제시스템 속에서 욕망의 극대화를 경험하는 오늘, 인간의 크기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이 작아져버린 시대, 다석사상이 우리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데에 어떤 사상과 실천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 혁명보다 일상의 혁명이 힘들고, 몸에 밴 관행과 습관으로 사람만큼 바뀌기 힘든 존재가 없다는 것을 이즈음 더욱 실감하기 때문입니다.(그런 때문일까요. 기질을 변화시켜(變化氣質) 성인聖人되기를 공부의 목적으로 삼아 사람의 변화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그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고자 한 동양의 성현들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 이처럼 성찰이 갈급한 시대에 『다석강의』를 다시 읽어내고자 한 저자는 다석의 사상을 ‘귀일신학(歸一神學)’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귀일’은 “모든 종교의 외형상, 현상적 차이가 있지만 진리는 하나뿐” 이며 이는 “신중심적 다원주의라는 서구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그리고 “신이라는 실체를 말하지 않고 전체와 개체의 관계에 역점을” 둔 것이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랜 다석사상 연구의 결정(結晶)을 ‘귀일신학’이란 이름으로 오롯하게 담아 놓았습니다.
- 그렇다면 ‘귀일’이란 무슨 뜻일까요. 짧은 지면에 저자의 ‘귀일신학’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제 힘이 닿지 못하나, 저자가 ‘귀일’의 핵심은 ‘참나’를 찾는 데에 있다고 한 데서 뜻의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주생성의 근원인 ‘하나’는 본디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본래 ‘하나’였기에 그 하나로 돌아가는 바를 일컬어 ‘귀일’이라 합니다. 여기서 “사람 속에 천지가 하나로 되기에(人中天地一) 사람(人)이 중요”한 것은 “본래적 하나가 인간 속에” 있기 때문이며 다석은 이를 인간의 ‘밑둥’, ‘바탈’이라 하고, ‘하느님 아들’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그러고보면 저자가 말한 ‘신학’이 처음부터 이미 서구의 유신론적 신학 개념을 설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귀일신학’으로 다석사상을 독해하며 ‘귀일신학’의 뜻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 이후 시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긴 것일까요?
- 이런 물음 속에 저는 ‘생각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는 다석의 ‘염재신재’(念在神在), 즉 ‘생각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는 깨침을 전하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저자는 유학의 신독(愼獨)을 예로 들어 “어떤 시공간 속에서도 하느님이 함께 있다는 확신 하에 자기 삶을 성찰하는 이들을 양육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의 뜻에 기대어 관견을 적으면, 생각이 있는 곳에 하느님의 현존을 참으로 믿게 된다면 우리는 사람과 모든 존재를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이 땅에 뿌리박되 매이지 않고 하늘을 바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생각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는 믿음은 ‘본래적 하나’ 즉 우리 안의 속알(영, 빛)을 깨닫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팬데믹 이후 시대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과 세계관의 변화는 인간이란 ‘본래적 하나’, 속알․영․빛을 품은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그러기에 저자는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역할, 제도로서의 종교를 비판하며 ‘영성으로서의 종교’가 영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있음과 인간의 영(속알, 빛)은 시공간에 매이지 않고 제도에 갇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오늘을 ‘일상의 종교화’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역설합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인식이 담긴 본서는 다석사상을 귀일신학으로 해석하는 저자가 종교적, 영적 혼돈의 시대, 영적 삶의 실천이 절실한 코로나 19시대 이후를 사는 기독교인들과 종교인들에게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이제 책 속으로 좀 더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은 『다석강의』의 차례를 따라 모두 43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석강의』 전체 43강중 첫 강의와 마지막 강의가 “모두 사생관,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을 새로이 발견하고, “삶과 죽음은 배를 갈아타는 것일 뿐이다”, “알몸이 아니라 얼맘으로 살라”로 되어 있음에 주목합니다. “종교란 결국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니라 얼로 사는 삶, “죽음을 삶 속에서 초월(극복)하고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다석의 부활사상임을 강조합니다. 어쩌면 첫 강의와 마지막 강의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 그리고 죽음을 삶 속에서 초월하고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 데에 다석사상의 전체가 담겨 있지 않은가 합니다.
- 그러나 저자는 좀 더 긴절하게 다석사상의 종교(신학)적 가치를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저자는 다석의 ‘없이 계신 이’를 신에 대한 동양적 이해의 표현으로 봅니다. ‘있음’으로서의 유신론적 표상이 아닌 ‘없이 있는’ 대극의 일치를 다석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없이 계신 이’는 ‘있음’과 ‘없음’ 어느 쪽에도 붙들리지 않는 신(神)을 표현한 말입니다.(저는 여기서 ‘신’을 ‘이름’과 ‘있음’에 가둔 종교인들의 폭력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둘째, 다석이 인간의 ‘밑둥(바탈)’으로서의 신이라는 맥락에서 인간 속에서 신적인 것을 찾은 것입니다. 다석은 ‘얼’의 차원에서 붓다와 예수 모두 본질상 같다는 주장을 합니다. “자신의 내면의 빛으로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다석의 지론인데, 저자에 따르면 이를 통해 다석은 대상적 믿음, 곧 대속론(代贖論)에 의존한 정통기독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저자가 언급한, 대속이 아닌 자속自贖의 맥락에서 ‘동양적 기독교’의 뜻을 사유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셋째, 현실에서 인간은 자신의 내면의 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합니다. 그런 중에도 저자에 따르면 ‘제 뜻 버려 하늘 뜻 구한 존재들’인 이 땅의 성인들이 있습니다. ‘몸 줄여 마음 늘리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저자가 말한바, ‘길을 가다 길이 된’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다석이 바로 “그 길을 예수의 방식대로 가고자 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예수가 ‘제 뜻을 버려 하늘 뜻’을 구했기에 그리스도가 되었듯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길임을 저자는 일깨우고 있습니다.
- 이처럼 우리에게 삶의 전환을 요구하는 다석사상은 오늘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물론 다석사상이 가진 의미를 이 시대에 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석 사상이 오늘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를 네 가지로 꼽습니다. 첫째, 다석사상에 담긴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각성입니다. 다석사상의 핵심은 “인간을 성인, 군자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선한 존재로” 보는 데에 있습니다. 본래 모두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하늘이 부여한 본성(바탈)을 지닌’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석사상에는 인간존재의 생태학적 각성을 통한 생태적 자아의 각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다석이 얼만을 중시하지 않고 몸도 중시하며 일식(一食)과 단색(斷色)을 통해 탐진치(貪瞋癡)를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다석사상에는 ‘행한 것만큼만 아는(믿은) 것이다-지행합일의 삶’, ‘밖의 불을 끄고 자신의 빛을 따라 살라’는 실천수행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저자의 비판대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사는 종교인일수록” 제소리 없이 남의 말만 하며 살기에 몸과 마음이 따로 놉니다. 자신이 읽는 종교의 경전들이 제소리가 되는 과정을 겪지 않은 결과입니다. 넷째, 다석사상에는 문명비판적(생태적) 시각이 숨 쉬고 있습니다. 다석에 따르면 우리 몸은 탐진치의 훈습으로 길들여져 있습니다. 이에 맞서 다석은 일식을 행하며 ‘제 좀 줄여 마음 키우는’ 삶으로 ‘세상을 구하는 십자가’의 뜻을 살아내고자 했습니다. 다석의 이러한 실천수행을 거듭 보여준 저자는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단순한 삶의 양식’에서 비롯될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면서, 다석의 삶과 사상에 대한 재해석이 문명사적인 맥락에서 새롭게 재의미화되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 앞에서도 비쳤듯 저자는 ‘귀일신학’으로 인식한 다석사상을 학문의 언어로 가두지 않고 누구나 음미할 수 있도록 다석사상의 핵심을 자상하게 풀어놓았습니다. 특히 본서에는 다석사상의 고갱이를 모은 다석강의를 두고 저자가 오래도록 묵히고 삭인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거짓 글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지만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오래지 않아 거짓임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러나 참 글은 시간을 견디며 더욱 우리의 삶과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참마음이 담긴 구도와 사색의 깊이를 경험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서가 다석사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영적 자양이 되어 우리 안의 ‘속알’(빛)이 밝혀지길 간절히 바라며 이 땅에서 ‘영원’을 경험하고 지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 마지막으로, 책속에는 곱씹어 음미할 구절이 너무도 많은데, 그중 오늘의 한국 현실을 생각하니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 대목이 떠오릅니다. 사람에 대한 경외와 존중이 사라지고 존엄성이 훼손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사람들한테서 하느님의 형상과 서로의 속알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사람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 도구처럼 함부로 대하는 오늘, 다석의 ‘존신우애윤리유’(尊信友愛倫理由)를 풀어놓은 저자의 다음 말은 깊이 새겨 삶속에 육화해야 할 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우애, 형제 사랑이다. 우애는 하느님을 만난 경지이다. 살(色)끼리 만나지 않고 정신과 말씀이 하나 상태로 만난 까닭이다. 사람은 육체로 보아 짐승이지만 그 안에 하느님 씨(속알)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몸도 중요한 것이다. 다석이 ‘몸성히’를 강조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인간 속의 높은 곳, 그곳을 다석은 ‘존’(尊)이라 불렀다. 그렇기에 인간은 인격을 지녀야 옳다. 상대적인 나는 ‘격’(格)을 지닐 수 없다. 인간이 우애하는 한 비로소 정신적 존재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인간(人)의 말(言) 바로 그것이 믿을 신(信)이다. 이것은 남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은 자신을 높이는 길이다. 자신을 높은 곳에 둘 때 타자와의 관계도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서는 ‘인간 속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말하며 인간 몸을 하느님 성전이라 했다. 다석은 이 말을 하느님의 씨앗이라고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 씨앗의 생명력은 무궁무진하다. 결코 죽어 소멸되지 않는다. 이런 하느님 씨가 자신 속에서 싹트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종교가 비롯할 수 있다.” (「제38강 사랑-자신의 덕(곧이)으로 이웃을 이롭게 하라」, 415~416쪽)
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회 내달 출범
/0 코멘트/카테고리: 보도자료 /작성자: pig790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회 내달 출범
“일제 강점기 젊은이 이끈 신앙정신 배우고 계승하자”
사애리시 선교사의 생전 모습. 하늘중앙교회 제공
1900년 미국연합감리회 파송을 받은 한 선교사가 한국 땅을 밟는다. 당시 29세였던 사애리시(史愛理施·앨리스 샤프·1871~1972) 선교사였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한국에서 로버트 샤프 선교사와 결혼한 뒤 충남 공주에 선교기지를 세웠다. 부부는 교육 선교와 여성 지도력 양성에 방점을 찍었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1906년 선교 활동 중 병에 걸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역을 계속하다 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됐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은퇴선교사요양원에서 지내다 72년 9월 8일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에서 사역하며 공주영명중·고등학교 전신인 명설학교를 비롯해 9개의 여학교와 7개의 유치원을 설립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인 전밀라와 여성 경찰서장 노마리아가 사애리시 선교사의 제자였다.
1919년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에게 독립의식을 심어준 것도 그였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1910년 충남 천안 병천면 지령리교회에서 여덟 살이던 유 열사를 만났다. 그는 나이가 어렸지만, 신앙심이 깊고 영리했던 유 열사를 눈여겨보다 수양딸로 삼았다. 1916년에는 유 열사를 서울 이화학당에 편입시켰다. 여성 지도자로 키우려는 취지에서였다. 비슷한 시기 사애리시 선교사는 영명학교 학생이던 조병옥을 연희전문학교로 유학 보내 지도자 훈련을 시켰다.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들도 후원했다.
그는 앨리스 샤프라는 본명보다 한국명 사애리시로 널리 불렸다. 그만큼 허물없이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가까이 지냈다. 지역 주민들은 그를 ‘사부인’으로 부르며 의지했다.
이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과 활동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충남 지역 감리교회들이 나섰다. 이들 교회를 주축으로 ‘앨리스 샤프 선교사 선교 기념사업회’가 다음 달 정식 출범한다.
유영완 천안 하늘중앙교회 목사는 1일 “사애리시 선교사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당대 여러 젊은이를 이끈 신앙의 어머니였다”면서 “여성을 일깨우고 한국의 근대화를 꿈꿨던 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늘중앙교회는 지난 8일 교회에서 사애리시 선교사 흉상 제막식을 진행했다. 이 교회도 1905년 사애리시 선교사가 설립했다.
‘이야기 사애리시’(신앙과지성사)를 쓴 임연철 박사도 “사부인은 충남 지역 어르신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했던 분”이라면서 “제 친할머니 강계순 권사를 논산제일감리교회로 전도해 우리 집안에 복음을 선물하셨다”고 했다. 그는 미국 드루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사부인과 관련한 사료를 수집해 집필한 전기를 지난 3월 출간했다. 그는 “신앙의 후배들이 선한 삶을 살았던 선배를 기억해야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당부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00619&code=23111111&cp=nv
문화가소식 – 이야기 사애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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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문화가 소식은 이슬기 기자가 전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최초 여성교육기관을 세우며 한국에서 39년 동안 선교사로 헌신한 사애리시 선교사의 전기를 담은 책. 이야기 사애리시 입니다. 저자 임연철 박사는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서 사애리시 선교사를 통해 받은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시간이 지나 사부인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사부인의 39년 동안 한국에서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책에 풀어냈습니다. Int) 임연철 박사 / 드루대학교 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 사 부인은 당시 배움에 소외됐던 여성들에게 교육의 장을 마련해주었습니다.공주 영명학교를 비롯해 여학교와 유치원을 충남 곳곳에 설립했고 특별히 유관순 열사에게 공주 영명학교와 이화학당의 입학을 돕기도 했습니다. int) 임연철 박사 / 드루대학교 감리교 아카이브 연구원 [이야기 사애리시] 충청도 지역에서 여성들의 삶에 희망을 안겨준 충청 선교의 개척자 사애리시 선교사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입니다. CTS뉴스 이슬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