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욕망과 숭고한 분노

 

<불타는 욕망과 숭고한 분노>, 조건상 저, 신앙과지성사, 2022

1.

한국교회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강단에서는 옳고 그름을 말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설교라고 하기에도 송구스러운데 대부분 교회들은 ‘말씀 선포’라고 순서에 규정하고 있다. 말씀 선포라니? 차라리 설교라고 놔두는 게 좋을법하다. 대다수 교회가 말씀을 선포하기보다는 듣기 좋은 말로 신도들의 비위(?)나 맞추기 일쑤다. 그래서 J 목사처럼 반은 코미디와 흡사하게 신도들을 웃겨야 사람들이 몰리고 행복해한다. 강도 만난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아프게 소리쳐도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면 곧 이상한 사람이나 좌파로 몰린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은 그들의 눈높이 적절한 선에서 예수를 전하고 빛과 소금의 삶을 중화시켜 전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주변인의 범주에서 머문 지 오래되었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중추 세력으로서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강단에서 정의와 평화의 길을 외치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더욱 슬픈 일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란 분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이스라엘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광화문으로 향해가면서 목청을 높인다.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슬픈 현실이 되고 말았다.

2.

역사의식의 부재가 한국교회의 강단을 흐물흐물하게 한 지금, 나이 70이 훨씬 넘고, 이미 은퇴하신 목사님의 올곧은 소리가 담긴 책을 출판하게 되어 기쁘다. <불타는 욕망과 숭고한 분노>라는 제목의 이 책은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씀을 평생 부여잡고 살아온 조건상 목사님의 칼럼집이다. 제목이 다소 아이러니해서 나는 저자인 조 목사님께 제목을 보편성 있게 “욕망·예수·분노”로 하자고 말씀드렸으나 그것은 나의 짧은 견해였다.

고대 희랍 플라톤 시대 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의 삶을 충동적으로 이끌어 가는 강한 힘이 두 개가 있는데 이 두 힘을 메타포로 말하면, 마치 전사가 휘두르는 채찍을 맞으며 전차를 끌고 달리는 두 필 말의 힘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필 중 말 하나는 ‘육체적 욕망’이고 다른 말 하나는 ‘숭고한 분노’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 그림을 저자는 마치 영화 <벤허>를 상상케 하는 그림으로 보내왔다.

저자 조건상 목사님은 이 책의 제목을 앞세워 책에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여한다. “믿음이란 신을 신뢰하는 마음의 정적인 상태이기보다, 삶의 거룩한 목표를 향한 선한 싸움의 용기와 정신이다. 그리스도인의 선한 싸움은 사람을 적으로 두고 싸우는 싸움이 아닌, 죄와 악을 이기기 위한 싸움이다. 욕망과의 전쟁이다. 결국 믿음은 천국을 선취하기 위한 선한 싸움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미국에서 여러 교회를 목회했다. 코리안-아메리칸, 이민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주제로 다루는 칼럼을 쓰다 보니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다. 이 책에서 흐르는 정신은 믿음, 즉 숭고한 분노이다. 처음부터 이런 논리를 전개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의 정황에서 그때그때 마다 쓴 글인데 결코 교회의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소신껏 목회한 목회자의 역사적 안목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신앙과지성사의 책마다 단골로 추천사를 쓰시는 정희수 감독님은 이 책을 “나그네가 펼친 평화의 해석학”이라고 규정했다. 정 감독님은 추천사의 서두를 이렇게 썼다. 평생 말없이 묵묵하게 살아온 변방의 목회자인 저자 조건상 목사님과 이 책의 배경을 잘 말해주고 있다.

“목양의 길목에서 심장을 갖고 산다는 것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 보인다. 현대를 살면서 자꾸 주변으로 밀리는 목양 지평이 우선적 이유이고, 복합적인 세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올곧은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자유를 누리고 살고자 하는 것을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꾸 뒤틀어 놓고 허물기 때문이다.”

3.

나는 조건상 목사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의 출판 사역을 늘 격려해 주시는 미국의 윤길상 목사님의 주선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내고 보니 연로하신 목사님이신데 아직도 정의와 분노의 시각이 살아 계신 것에 놀랍고도 기뻤다. 이 책 원고의 대부분이 인문학적인 토대에서 비롯된 것이고 풍부한 독서량에서 기인 된 것이라 볼 때 출판인으로서 마냥 게으른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멀리 미국에 살면서 저자는 몇 년 전 펼쳐진 ‘촛불정신’을 미안한 마음으로 칭송하면서 촛불의 힘과 민중들의 힘, 그리고 정의를 향한 불타는 숭고한 분노를 발견하고 이 책에 수록된 중심 원고들을 칼럼으로 썼다. 정의를 물타기 하며 설교하는 시대, 숭고한 예수님의 분노를 현실과 접목시키지 못하는 슬픈 교회 공동체를 목격하는 지금, 감리교회의 노 목사로서 우리를 향해 촛불정신을 외치는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아직도 지금은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때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한국스포츠맨십의 전도사 반하트

한국스포츠맨십의 전도사 반하트

(<스포츠맨십의 전도사 반하트>, 임연철 지음, 신앙과지성사 펴냄, 2021)

시방 한국에서 기독교(교회)가 처참하게 지탄받는 이유는 초창기에 너무 잘했기 때문이 아닐까?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니 등등 평가절하하는 소리들도 많았지만, 외국인의 신분으로 미천한 이 땅에 와서 그들만큼 살고 일했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게 중에는 눈살을 찌푸릴 일을 하고 친일에 앞장섰던 사람들도 있지만 이름만 쭉 적어도 한 열 페이지는 될성싶은 분들이 정말 헌신적인 삶을 사시다 순교하거나 불행한 시간과 싸우며 살아갔다.

제 나라에 있었으면 폼나게 사실 분들이 많았다. 희생적 삶을 사시면서 전했던 그들의 복음이 탄력을 받아 이 땅 위에서 많은 사건과 결과물들을 세워나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학교와 병원과 교회이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대충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반하트는 좀 색다르다. 100년 전 스포츠맨십의 전도사로 성경보다 더 귀중히 축구공, 배구공, 야구공, 농구공을 큰 가방에 넣어 와서 이 스포츠 놀이를 처음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체육선생이기 때문이다.

이 책 <YMCA 통해 100년전 농구 축구 배구를 전한 한국스포츠맨십의 전도사 반하트>는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 축구 야구 배구 농구를 처음 소개한 YMCA 체육교사 ‘반하트’의 100년 체육사의 발자취이자 희망과 절망의 역동적 삶의 기록이다.

‘반하트’는 한국 체육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한국 이름 ‘반하두’나 본명인 ‘반하트’가 낯설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매번 수십 개의 메달을 따고 프로 구단이 있을 만큼 활성화된 축구 야구 농구 배구는 물론, 육상과 학교 체육 등 21세기 한국 체육이 오늘의 위상을 갖게 된 데는, 100년 전 전문 체육지도자로 등장한 반하트의 역할이 매우 컸다.

1916년 3월 내한해 1940년 11월 한국을 떠날 때까지 YMCA를 통해 한국을 위해 봉사한 B. P. 반하트의 삶은 일제강점기 고통 속에 신음하던 한민족과 궤를 같이하는 굴곡 많은 삶이었다.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는 식민지 백성에게 체육을 통해 생활의 활력을 넣어 주려했고 교육과 농민운동을 통해 청소년과 농촌에도 삶의 활기를 넣어주려고 진력을 다한 봉사의 삶이었다.

53년의 생애 중 20대 후반부터 30대와 40대 삶의 전성기 24년을 한국에서 일한 반하트는 1940년 미국 일본 관계가 악화되며 철수령에 따라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생각한 그는 언제든 여건만 되면 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미국인 동료들에게 말할 만큼 한국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한국의 산과 바다, 그가 교육했던 젊은이를 비롯해 동료와 기독교인 등 한국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했던 반하트는 당시 국제정세로 말미암아 그의 삶 끝까지 한국과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남긴 흔적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YMCA와 체육계를 비롯한 현대 한국 사회 곳곳에 그 결과로 남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유관순 열사를 거두어 주고 살며 공부시킨 ‘사애리시 선교사’의 전기를 내고 그것을 토대로 국민훈장까지 추서 받게 했던 임연철 박사(전 동아일보 문화부장, 국립극장장)가 사애리시의 이야기를 정리하다 발견한 것이 유관순 시신을 지키고 장례를 치러준 지네트 월터(이화교장) 선교사 이야기다, 또 지네트 월터를 집필하다 발견한 것이 ‘반하트’체육선교사 이야기다. 재미있다. 꼭 일독을 부탁한다.

세 번째로 이어지는 임 박사의 한국기독교 역사 속의 인물 열전인데, 70이 훨씬 넘은 연세에 반하트를 끝내고 나서 또 시작한단다. 공주에서 헌신했던 ‘마랜보딩’간호선교사 이야기를 또 쓴단다. 하여 내년 초 마랜보딩의 고향 덴마크 생가를 가신단다. 열정이 대단한 필자이신 것까지는 좋은데 걱정이다. 아직 소개할 몇 명 더 남았단다. 신문기자 출신의 역사학도라 그런가? 그의 행보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

 

한국 민주주의의 친구, 조지 오글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 조지 오글 추모 1주년, 신앙과지성사, 2021

한국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서일까? 오명걸 목사님이 소천하시자 여러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쓴 이 책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란 책을 구했으면 한다고. 목사님의 건강이 쇠약해져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한 권밖에 없는 이 책을 여러 번 만지작거렸는데 추모 1주기를 맞고서야 이 책을 다시 펴낸다. 도로시 사모님의 편지에서 보듯이 오글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 책을 읽어 달라고 하시며 그때마다 매우 흡족해하셨다고 한다. 자신이 쓴 책 중에 가장 사랑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말씀하셨다니 더욱 발행인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2003년 5월이니 벌써 참 오래전 일이다. 당시 애틀랜타 한인교회를 맡아 젊은 목회를 시작한 ‘믿음의 벗’ 김정호 목사님이 전화를 했다. 6월 말경 미국에서 통일 집회를 하는데, 그때 오글 목사님의 은퇴 기념으로 출판 축하예배를 가질 것이니 급히 책을 만들어 들고 오라는 것이다. 아뿔싸, 시간도 없는 데다 거기에다 오글 목사님의 수제자(?) 조화순 목사님을 모시고 오라고 부연했다. 큰 고민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 많은 책 1,000부를 어떻게 가지고 갈까? 궁리 끝에 기독학생회 총무를 지내신 정상복 목사님과 조 목사님과 나, 세 사람이 애틀랜타 코이노니아 팜으로 떠났다. 그렇게 급하게 탄생한 책이라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오글 목사님은 이 책을 굉장히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이 모임 첫날 밤, 참가자 모두에게 이 책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의 희망찬 밤이 되도록 만들었다.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오글 목사님은 소천하시면서 이 책을 한국 땅에 통일의 씨앗으로 민들레 홀씨처럼 뿌려지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책의 틀을 고민하고 몰두하는 시간에 만나게 된 이철 감독회장님께 추모를 겸한 재출간을 말씀드렸더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늘 카톡으로 나의 출판 사역을 염려해준 연합감리교회 정희수 감독님께서도 기뻐하시며 추모사를 쓰시고 여러 일들을 해주셨다. 발 빠른 송병구 목사님에게 오글 목사님이 걸어온 길을 화보 형식으로 엮어 달라고 했더니 너무 정성껏 작성해 왔다. 그리고 인천산선의 총무 김도진 목사님이 추천한 최영희 의원님과도 많은 묵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옥고가 탄생했다. 최 의원님은 오글 목사님의 지도를 받았던 인천산선의 실무자 출신이라서 그 원고가 더욱 뜻깊다. 자연스럽게 오글 목사님과 관련이 있는 네 단체가 공동기획으로 참여한 모양이 갖춰져서 제1부 추모의 장을 뜻깊게 장식한다.

특별히 목사님의 빈자리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편지를 써 주신 도로시 사모님께 머리를 숙여 깊이 감사드리며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기도한다. 여러 번 오간 편지에서 중간 역할을 충실히 해준 케티 오글에게도 감사드린다. 건강이 매우 안 좋으신데도 간행사를 협력해 주신 조화순 목사님도 잊을 수 없다. 오글 목사님을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분이라고 믿고 사셨는데. 허전한 마음 잘 가누시며 건강하게 지내시길 빌 뿐이다.

한국 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다룬 오글 목사님의 글을 제2부로 오롯이 실으면서 다소 아쉬운 표현과 사건 기술 등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었으나 그냥 두었다. 오글 목사님의 체취를 올곧게 담기 위한 것이고, 또 미국인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쓸 수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다만 부제를 달아서 무슨 사건을 쓰려고 했는지 좀 더 명확한 소통이 되도록 연결 작업을 하였다.

한국 사람들도 쓰기 어려운 글을 역사적 안목과 여러 사건의 특성과 시대 정신을 종합하여 소설 형식으로 생동감 있게 글을 쓰신 목사님의 노력이 정말로 감탄스럽다. 특히 선교사들이 취했던 애매한 정치적 입장과 현실 도피적인 태도 때문에 선교사를 보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지만, 목사님이 보여주신 예언자적인 용기는 한국 사회를 깨우쳤고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음은 부정할 길이 없다.

역사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길로만 순항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는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선각자가 되신 오글 목사님을 추모하는 책을 펴낼 수 있음이 영광이다. 오글 목사님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 민중들의 싸움이 한국을 넘어 세계역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고귀한 역사를 어느 특정 개개인이 존중받고 기억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깊은 신앙으로 분연히 일어섰던 민중들과 공동체가 영원히 존중받고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우리에게 미래를 향한 어떤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하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질곡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느라 오글 목사님이 진지하게 던지신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그런 채로 목사님을 멀리 떠나시게 한 것이 너무나 아쉽고 죄스럽다.

책의 마무리 편집 점검을 하면서 우연히 기독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안재웅 이사장님과 카톡 편지를 주고받았다. 안 목사님께 “오늘 목사님 책을 마치는 중인데 왜 이리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오글 목사님뿐만 아니라 원고를 주신 여러분들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 책이 많은 분을 일깨워주기도 하고 보듬어 주기도 하면서 오래도록 목사님을 기억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위해 애써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책을 위해 여러 조언과 도움을 주신 정진우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돌아가시기 직전,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때 한국 민주주의 발전공로로 국민훈장을 수여 받으신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정희수 감독님을 통해 2021년 7월 가까운 지인들이 모여 콜로라도에서 오글 목사님의 묘비를 세우고 묘소를 정비했다는 소식과 사진을 책에 담을 수 있어 더욱 고맙다. 돌이켜보니 오글 목사님을 한국에서 강제 추방시킨 것은 독재정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남미에서 해방자 예수와 함께 걷다

남미에서 해방자 예수와 함께 걷다

<엘 까미난떼>, 홍인식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1

I.

사람마다 사연이 많은 법이다. 더구나 베이비 부머 세대인 우리네들에게는 지금 생각해 보면 눈물겨운 사연들을 지니고 산다. 내가 홍인식 박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6년인 것 같다. 예장의 이근복 목사를 통해서 가까운 후배인데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하고 미구에즈 보니노란 유명한 분에게서 학위를 받고 목회했는데 원고를 썼으니 검토해 보란 전화였다. 호기심이 댕겼다. 당장 검토할 필요 없으니 만나서 식사나 합시다 하고 원고도 보지 않은 채 출판을 승인해 버렸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홍인식 목사가 쉽게 쓴 해방신학 이야기>다. 모두가 한물간 해방신학 책을 왜 또 내느냐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런 저평가를 받았던 그 책이 2017년 문체부가 선정하는 우수교양도서로 뽑히고, 경부선 KTX 승객용으로도 진열되는 효자 노릇을 했으니! 홍인식 박사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가는 곳마다 책 권하는 ‘권서인’이 되어 3쇄 4천부를 팔며 가난한 출판사를 도와주고서 호남의 장로교 1번지인 순천중앙교회 담임으로 갔다.

II.
순천을 몇 차례 드나들며 제안을 했다. “홍 박사님, 여러 차례 들은 개인사가 정말 구성진데 우리 신앙과지성사의 나와 예수 시리즈에다 살아온 이야기를 좀 써 주세요.” “아니, 장로님은 왜 자꾸만 내 삶을 벌거벗기려고만 하세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홍 목사님의 신앙고백적 삶은 정말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힘과 용기가 될 것이에요. 그러니 쓰세요.” 그런 강력한 요청을 홍 박사는 결국 받아들였다. 그리고 A4 400장의 보따리를 내게 내밀었다. 말년에 안정된 중견교회의 담임자가 되어 4~5년 목회하면서 홍 박사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쓴 것인데, 결국 그 교회에서 쫓겨나고 이삿짐을 싣고 서울로 올라와서 짐을 풀자마자 그 원고 보따리를 내게 가져온 것이다. “최 장로님, 여기 있어요! 최 장로님이 그토록 쓰라고 졸라댔던 내 삶의 이야기, 장로님이 죽이 되던지, 밥이 되든지 알아서 하세요. 저는 며칠간 발길 가는 대로 떠돌면서 그분께 또 다른 바람을 불게 해달라고 걷는 기도를 하렵니다!”

III.
홍 목사님께 미안했다. 원고를 읽어 가면서 점점 더 미안했다. 곱상하게 양반집 아들처럼 생긴 분이 부모에게 버려져 떠돌이가 되었는데, 그분께서는 결국 목회자로 만드시고 상처받고 찢기게 하셔서 위로의 선한 종이 되게 하셨다. 원고를 거의 반으로 줄이고 편집을 끝냈다. 마지막 실리지 못하는 원고를 아쉬워하는 홍 박사에게 나는 더 무식한 부탁을 했다. “홍 박사님, 이왕 책을 내시는 것인데 좀 더 까발려 주세요. 서문이 너무 점잖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홍 박사님은 “장로님, 저 스타벅스에 갔다 올게요.” 하더니 저자 서문을 완전히 갈아치웠다. 너무도 슬픈 사연을 담아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시발택시에 실려 엄마와 멀어져 가면서 ‘헨젤과 그레텔’을 생각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의해 숲속에 버림받은 줄 알게 된 아이들이 숲으로 가면서 조약돌을 떨어뜨려 돌아올 길을 만들어 놓았던, 달빛에 반짝이는 조약돌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무엇을 떨어뜨려야 엄마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홍 박사의 영원한 자유인의 삶이 시작된다. 4~5년 간격으로 남미를 순례하는 방황의 삶과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나 영화 같은 삶이다. 읽어보기 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적인 책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팔 걷어붙이고 써주신 한완상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떠돌이 길에서 예수를 만났기에 오늘의 홍인식 목사가 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가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예수님다운 대안적 목회를 꿈꾸며 실천하려고 했던 것은 생명과 진리에 이르는 길 자체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IV.
며칠 전 (2021. 10. 6) 공덕감리교회에서 한겨레신문과 조현 TV가 장장 5시간에 걸쳐 이 책을 중심으로 홍 박사의 삶과 신앙과 신학에 대하여 인터뷰했다. 5시간이면 비행기로 라오스쯤 갈 텐데, 조현과 홍인식 이 두 사람은 우리 시대의 이빨이 튼튼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장장 5시간 (내가 그나마 여러 차례 눈치를 주었기에 망정이지, 둘만 있었으면 족히 10시간은 떠들었을 것이다) 이야기 마라톤을 끝내고 조현 기자는 말했다. “와, 오늘을 사는 한국 기독교인의 삶의 지침서와 신앙인의 길이 여기 다 나왔네”라고. 우리는 밤 9시 가까이 소머리 곰탕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조현 기자 부부와 홍 박사와 나, 넷이서. 그 자리에서 조 기자는 나보다 한 술 더 떴다. 홍 박사의 슬픈 이야기를 몇 가지 더 빼내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아버지는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냐고 물었다. 홍 박사는 천정을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내 나이쯤 되셨을 거예요. 65세.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 죄를 대속해 주려고 네가 목사가 되었구나!” 내가 만든 책 중에서 현재까지 가장 슬프고 리얼한 책이 바로 이 책, 홍인식의 <엘 까미난떼>다. 스페인어로 걷는자란 뜻이다. 그런데 그의 떠돌이 삶은 과연 하늘의 뜻이었나?

최병천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

다시 파울로 프레이리

 

 

<파울로 프레이리 신학·영성·신학>, 제임스 D. 카릴로, 드릭 보이드 지음, 최종수 옮김, 신앙과지성사, 2021

내가 감청 시절이니 1980년 전후가 되겠다. 암울하고 잔혹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지배했던 시대다. 웬만한 책은 다 ‘판금’ 처분을 받았다. 비판적이거나 정권에 도전하는 내용들의 책들은 다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혔고 판금 처분을 받은 책들은 서점판매와 유통이 불가했다. 만약 어길시 치도곤이를 치렀고 심하면 감옥행이었다. 판금 처분을 받았던 책들 가운데 이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하여 얼마나 좋은 책들이 많았었나? 소위 ‘판금’ 책들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던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았었나? 그러므로 정권의 통치 차원에서 행했던 판금 정책은 오히려 선을 구축하게 한 악화의 정책이었으리라.

그중의 한 책이 있었다. “페다고지, 페다고지”란 말이 우리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다. 마치 ‘페다고지’를 보지 못한 사람은 대화에 낄 수도 없고, 약간 저급한 지식을 취급을 받았었다. 순식간에 영문판 복사본이 나돌았다. 하여, 나도 저급한 지식인 청년 취급을 받지 않으려고 복사본을 몰래 구입했다. 그런데 영어를 잘 못하는 까막눈인 나는 답답할 수밖에. 그런데도 아닌 척하면서 다른 책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가지고 다녔다. 만남의 장소도, 집회 장소에도 그랬다. 제일 위에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피억압자의 교육학(Pedagogy of the Oppressed』를 올려놓고 폼을 잡았던 웃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미국감리교회(UMC)에서 은퇴하시고 틈만 나면 산속을 헤매면서 버섯을 찾아다니시고 그 무수한 가짓수의 버섯들을 공부하려 애쓰시는 최종수 목사님이 내게 불쑥 찾아오셨다 (물론 최 목사님은 한국 방문 중에는 꼭 신앙과지성사를 찾으셨다.) 오시자마자 하시는 말씀, “최 장로님, 내가 펜실베이니아 대학 구내 서점에서 너무나 반갑게 만난 책이에요. 이 책 번역할 테니 무조건 출판해 보세요.” 잊었던 파울로 프레이리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감청 시절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페다고지’를 들고 다니며 억압의 역사와 한 맺힌 사건들을 많이 해소했지 않았던가? “그럼요, 목사님! 얼른 가셔서 번역하세요. 저는 중개사를 통해서 이 책 저작권 신청부터 해 놓을게요.”

80세가 다 되시는 노구를 달래며 최 목사님은 2021년초 겨울부터 여름이 찾아올 때까지 긴 시간을 파울로 프레이리와 씨름했다. 명저를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고행길인가? 그리고 나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네덜란드의 원서 출판사와 씨름했다. 로열티가 너무 비쌌다. 그래도 어찌하랴 청년 시절 파울로 프레이리 선생님을 앞세워 품잡고 다닌 죄려니. 그렇게 6개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원고가 도착했고, ‘신앙과지성사’가 3개월 편집 작업하여 정말 귀중한 책 『Paulo Freire, His Faith, Spirituality, and Theology』가 한국에서도 탄생하게 되었다.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세계적인 교육철학자요, 『페다고지』의 저자로만 알려져 왔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만났고, 성서를 통해 예수의 영성을 깨닫고 체험했으며, 그것을 근간으로 세계적인 교육학의 대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숨겨진 일 비슷하게 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하여, 내가 이 책을 고집스럽게 앞뒤 계산도 하지 않고 무조건 이 험악한 한국의 출판시장에 내놓으려고 하는 큰 뜻은 『페다고지』는 ‘예수의 교육학’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가톨릭 신자였으나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학의 대가이기 이전에 민중과 함께 민중과 나란히 했던 크리스천 영성가란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나의 이런 갸륵함이 이 책 속에 숨어있다.

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리에 남영숙 목사님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한국에서 프레이리를 가장 잘 소화하고 있는 유범상 박사(한국방송통신대 교수)를 소개하고 추천사를 쓰게 했다. 내친김에 나도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글에 감탄하여 직접 편지를 보냈다는 부산 샘터교회 안중덕 목사(교육학 박사)에게 추천사를 부탁하였다. 이 책이 호평받으려니 넘어져도 풀밭이라 했던가?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할 무렵 프레이리 박사의 강연을 브라질에서 듣고 아직도 그 영향을 받아 『엘 까미난떼』를 쓴 우리 출판사의 필자인 홍인식 박사가 자천하며 추천사를 집필해 주어 더욱 멋진 책이 되었다.

이 책이 더욱 빛나는 것은 프레이리 박사의 부인인 니타(Nita)박사의 머리말이다. 그녀는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그를 잃은 아픔이 자신에게 진정한 기쁨으로 다가오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면서 프레이리의 삶과 사상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프레이리의 외면당했던 그의 믿음과 영성이 이 세상에서 가난과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할 것을 소망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이 출판되는 날이 프레이리의 탄생 100주년(1921.9.19.)이 되는 날이라서 더욱 기쁘다. 독자들과 이 좋은 책을 함께 나누기를 염원하면서 핵심 목차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1. 영성과 파울로 프레이리
2. 부활체험: 민중에로의 회심
3. 희망, 역사, 그리고 유토피아
4. “사랑의 우물”에 기반을 둔 사람
5. 진정성 있는 삶을 산 겸손의 사람
6. 해방신학에 남긴 프레이리의 발자취

최병천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

선교사 사애리시와 선교사 지네트 월터

선교사 사애리시와 선교사 지네트 월터

<이야기 사애리시> 임연철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0
<지네트 월터 이야기> 임연철 지음, 신앙과지성사, 2021

민족의 보배요, 감리교회의 자랑인 유관순 열사의 첫 스승은 선교사 사애리시이고, 그의 죽음을 거두어 준 마지막 스승은 선교사 지네트 월터인데, 우리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분의 삶과 신앙을 다룬 두 책이 모두 2020년과 2021년 세종도서에 선정되어 신앙과지성사의 발행인으로서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두 책을 소개한다. 이는 우리 한국감리교회와 한국교회에 안겨준 경사가 되었다.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유관순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 하에 이 두 책을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

1. 유관순 열사의 첫 스승, 『이야기 사애리시』

사애리시(Alice H. Sharp, 1871-1972)는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푸른 눈의 여성이다. 39년을 한국에서 헌신했지만 사애리시는 겨우 한국교회사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잊혀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결코 잊혀져선 안 되는 인물이다. 올해 순국 100주년이 되는 유관순 열사는 그의 손에 이끌려 공주 영명학교와 이화학당에서 공부했다. 우리 독립운동의 아이콘인 유관순 열사가 사애리시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운명적인 삶을 살게 되었을까?

사애리시는 일제 치하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공주영명학교를 비롯해 여학교 9곳, 유치원 7곳을 설립했다. 가마와 말을 타고 충청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세운 교회도 100여 곳이 넘는다. 이 책은 사애리시의 열정적 삶의 기록이다. 인간적인 아픔과 고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방인으로 한국을 위해 이국땅의 민초들과 더불어 살아간 고귀한 증언이다. 평생 언론인의 삶을 산 저자(임연철)는 미국 드루대 아카이브에서 3개월 동안 자료를 뒤졌고 그녀의 캐나다 생가까지 발로 뛰면서 생동감 있게 책을 엮었다. 2020년 정부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여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2.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마지막 스승, 『지네트 월터 이야기』

지네트 월터(1885-1977)는 1911년 이화학당에 대학과정이 개설될 때 내한, 1926년까지 영어와 체육 교사로 활동한 교육선교사다. 그녀가 봉사한 15년은 한국이 국권을 상실한 이듬해부터 1919년 3.1 운동으로 독립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주인공은 교사와 학당장 대리(1919-20), 학당장(1921-22)으로서 그 현장을 지켜보며 한민족과 아픔을 함께한 인물이다. 그녀는 특히 1920년 9월 28일 제자 유관순이 옥중 순국하자 서대문 형무소에서 직접 시신을 인수해 학교에 안치한 후 몸소 수의를 입히고 이튿날 장례식과 이태원 공동묘지 안장까지 주도함으로써 유관순의 마지막 스승이 되었다.

월터 학당장은 3.1운동 당시 연행되고 구속됐다 풀려난 학생 12명이 일경으로부터 당한 고문 증언을 영문 보고서로 작성, 미국 선교본부에 보냄으로써 일제의 만행을 알렸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최근의 ‘코로나 19’처럼 대유행을 할 때는 쓰러진 학생들의 체온을 재고 해열제를 먹여 독감의 희생자가 없도록 조치하는 등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모범을 보였다.

저자는 주인공의 전기를 쓰기 위해 2019년 미국 드루대(뉴저지주) 감리교문서보관소에서 장기간 연구하며 새로운 문헌과 사진 수백 점을 찾아내 전기에 반영했다. 또한, 캔자스주에 사는 후손을 찾아내고 주인공이 살았던 콜로라도주의 고가(古家)를 현지 조사해 집안에 보존되어 있는 앨범에서 알려지지 않은 100여 년 전 사진 수십 점을 전기에 소개했다. 이 같은 저자의 노력으로 유관순 열사의 순국 이후 과정이 정확히 밝혀졌으며 문헌과 사진을 통해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과 사회상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두 책을 쓴 임연철 박사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고교 시절부터 서울로 유학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할머니를 전도한 서양선교사 사애리시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며 성장했다. 알렉스 헤일리가 『뿌리』를 썼듯이 할머니와 같이 살던 시절을 유추하며 70살이 지난 노년에 ‘신앙적 뿌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 책으로 열매 맺게 되었다. 유관순 열사를 전도한 분이 자신의 할머니도 전도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 그의 기자 근성을 자극했고 뜻깊은 전기 작가가 되게 했다. 중앙일보(1974-1978)에서 기자를 시작해 동아일보(1978-2007)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고 국립극장장으로도 일했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1972)했고 성균관대학교에서 공연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숙명여대 등에서 ‘전시공연마케팅’을 강의했으며, 『예술경영』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 두 책이 널리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최병천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

 

어린이신학

어린이신학

<어린이신학>, 이신건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7

2020년 대한민국을 경악케 했던 사건 중의 하나가 서울특별시 양천구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살인 사건, ‘정인이 사건’이다. 정인이 사건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한 당시 8개월의 여자아이를 입양모 장하영과 입양부 안성은이 장기간 심하게 학대하여 16개월이 되었을 때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또한 설 연휴 직전인 2월 10일에는 경북 구미의 빌라에서 2살배기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친모는 아이를 빌라에 남겨둔 채 이사를 가버려 결국 아이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됐다. 발견 당시 아이의 사체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10살 조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이모 내외가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조카가 욕조에 빠졌다고 119에 신고한 이들은 실제로는 역할 분담까지 해가며 물고문 수준으로 조카를 학대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러한 아동 학대 사건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1960년부터 대한민국의 아동 학대 사건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위 사건 이외에도 2010년 이후의 아동 학대 사건만 살펴봐도 서울 광진구 구의동 어머니 살해 사건 (2011년), 울산 울주군 여아 학대 사망 사건 (2011년~ 2013년),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살인 사건 (2013년), 울산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 (2014년), 인천 송도국제도시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 (2015년), 인천 학대 여아 탈출 사건 (2015년), 부천 초등학생 토막살인 사건 (2012년~ 2015년), 부천 여중생 백골 살인 사건 (2015년~ 2016년), 평택 아동 살해 암매장 사건 (2013년~ 2016년), 청주 아동학대 암매장 사건 (2011년~ 2016년), 고준희 양 살인 사건 (2017년)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다양해지고 그 수법도 악랄해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동 학대 사건은 단순히 어린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아동 인권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예를 들면 정인이 사건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돼 전국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을 향한 학대와 범죄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다.

더욱이 정인이 사건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욱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들이 소위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순진무구하고 또한 방어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무참하게 학대받고 살해되는 상황에서 다시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책이 있다. 오래전(1997년)에 발간되었지만 신앙과지성사가 증보판으로 다시 출판된 이신건 저 『어린이 신학』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 신학』은 서울신학대학교 은퇴 교수 이신건 교수가 1997년 처음으로 발간한 책이다. 이 교수는 10년 가까이 해직 교수로서 살아가는 기간에 이 책을 저술한다. 어린이 신학은 어떤 책인가? 어린이 신학이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소개한다. 이 책은 어린이들이 거의 없는 교회학교의 현실에서 한 번쯤 공동으로 읽고 성찰해야 하는 책이다.

약하고 무능한 하나님과 신학적 대안!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의 투사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을 무한히 전능한 존재로 만들고 신앙해 왔다. 가부장적, 제국주의적인 문명 속에 형성된 구약성서에도 이런 하나님의 모습이 적잖게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낮추신 하나님이요, 스스로 높아지려는 권세가들과 지배자들을 철저히 전복하시는 혁명의 하나님이다. 무엇보다 “오직 어린이 같은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회에서 무시와 학대를 받아온 가장 연약한 인간인 어린이를 어른의 중심에 세우시고 어른보다 더 높이신 예수님의 행동, 그리고 스스로 어린이처럼 무력하고 무능하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은 바로 어린이와 같은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이중적인 폭력구조(힘센 자와 남성의 폭력)의 극복을 위한 대안

어린이 신학(어린이 하나님의 형상)이 어린이 학대에서 보이는 이중적인 폭력구조(힘센 자와 남성의 폭력)의 극복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신학적 전제가 가능할까? 세상 사람들도 이제는 지배와 착취, 차별과 학대를 점점 더 미워하며,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실현해 나가고 있다. 하물며 연약하고 온유한 모습을 통해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세상을 전복한 예수님, 약자를 끌어안고 그들의 편을 든 예수님을 믿는 교회는 얼마나 더욱 그리해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과거에 폭력적인 남성과 어른, 지배적인 권력자가 신봉한 폭력과 지배의 하나님을 과감히 버리고, 이제는 섬김과 사귐의 하나님을 선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린이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적합하고 절실한 하나님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 신학과 코로나 국면의 교회

예수님처럼 교회는 세상, 특히 세상에서 가장 멸시와 학대, 고통을 받는 자들의 편에 다가가서 그들을 섬기는 온유한 교회, 어린이와 같은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아직도 교회의 이익과 낡은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만 전전긍긍하는 교회, 세상을 섬기기보다는 스스로 세상보다 더 높아지려는 교만한 교회는 세상의 소망과 빛이 될 수 없으며, 변화의 누룩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부패의 세균이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오만한 인간에 대한 일종의 채찍이라면, 동시에 교회를 내리치는 경종과 회개의 채찍이기도 하다. 건물 숭배, 인물 숭배,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예배, 실천과 따름과 나눔이 없는 교회로 하여금 묶은 관행을 끊어내고 완전히 새롭게 탈출(출발)하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이다. 어린이 신학책을 통하여 어린이와 같은 하나님을 재발견할 때, 비로소 새로운 깨달음과 실천도 가능해질 것이다.

놀이하는 예수

어린이 신학은 어린이 예수라는 개념을 통하여 놀이하는 삶을 그 특징 중의 하나로 제안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엄숙한 신앙을 강조해 왔다. 신앙은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요즘과 같이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놀이하는 어린이 예수’에 대한 소개는 매우 획기적이다. 어린이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의 가까움과 현존을 증언하고 실천한 예수님은 엄숙한 동물 제사와 거래로 얼룩진 타락한 성전 예배 대신에 일상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운 잔치와 열린 사귐, 즐거운 놀이를 강조한다. 어린이 신학은 오직 어린이와 같은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숨김과 위선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춤과 노래, 노래로 맛보고 즐길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오늘날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를 위해서도 놀이의 신학은 시급히 재발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어린이 신학과 성령론

어린이다운 성령 경험은 마치 온유한 비둘기처럼 우리에게 조용하게, 온유하게 강림하는 성령 경험을 강조한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폭력적인 현실의 전복을 힘차게 노래했으며, 성전에 들어간 예수님은 성령 강림을 통한 현실의 변혁을 강하게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린 아기를 계속 탄생시키시는 주된 이유는 어른이 만든 부패하고 굳은 세상을 다시 갈아엎기 위해서이다.

이신건의 『어린이 신학』은 침체된 한국교회에 어린이 같은 활력과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해 주는 선물과 같은 책이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사랑하며 춤추라

 

사랑하며 춤추라

<사랑하며 춤추라>, 원혜영, 김장생 외, 신앙과지성사, 2018

미국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성실하게 한 사람으로 소문난 김정호 목사가 태평양을 건너와 반갑게 만날 때마다 단골 밥상의 굴비처럼 귀하게 나눈 이야기가 이 책의 기획 단초가 되었다. 김 목사는 미군 부대가 유독 많았던 의정부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이민 갔던 1.5세인데 자신은 선생님들을 잘 만나서 나름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지금은 목회에 지치고 삶의 의미가 무너져 내려도 찾아갈 선생님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김 목사는 목회 초년병 시절 곽노순, 홍근수 두 분의 목사님을 만나서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 너무나 큰 재산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뵙지는 못했지만 장인어른(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의 예수처럼 살아오신 짧은 생애에도 큰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의 진지한 “어른이 그리운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몇 번 되풀이 되었을 때 광현교회 서호석 목사가 제안했다. “그럼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어떨까?” 그게 좋겠다면서 두 사람은 크게 공감을 표하고 갔지만, 숙제는 내게 떨어졌다.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하다가 “예수의 삶을 살아낸 어른들의 이야기”를 부제로 하여 내 책상 앞에 그려진 지도는 다음과 같다.

대천덕 – 예수원에 연락하여 큰아드님에게 글을 부탁했는데, 자신은 한국말에 미숙하고 수제자 격인 양혜원 선생을 추천하여 집필.
장기려 – 인척이 없으므로 저서를 낸 지강유철 선생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집필을 의뢰함.
원경선 – 장남인 원혜영 의원에게 부탁. 쉴틈 없이 바쁘다는 것을 간신히 집필 부탁함.
김용기 – 손자인 김장생 교수에게 부탁하여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집필토록 함.
조아라 – 딸과 같은 YWCA연맹 사무총장 유성희 박사를 간곡히 청하여 집필토록 함.
나애시덕 – 양아들 격인 최종수 목사님에게 집필토록 함.
황광은 – 사위인 김정호 목사가 집필. 서문까지 씀.
권정생 – 친구인 종로서적 사장을 지낸 이철지 장로님이 고령에도 불구 투혼의 글솜씨 발휘함.
이현필 –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님께 정성을 다해 집필 부탁함.
마지막으로 전체 발문을 김기석 목사께서 흔쾌히 집필하기로 함.

워낙 유명하신 어른들의 글을 한군데 모아놓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또 그 의미를 더하려고 그분들과 가까이에 있는 분들을 집필자로 삼으려니 더욱 그러했다. 6개월이 넘게 씨름하여 원고를 받아냈다. 아홉 분의 훌륭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한 그릇에 담겨 책으로 나오니 정말 보람이 컸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 했던 분들의 삶을 담았다. 예수를 따르는 것이 실종된 채 겨우 교회 다니는 것으로 버티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책이다. 아홉 어른의 삶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책을 탄생시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김정호 목사의 서문대로 어느새 우리가 바라보고 살았던 어른들이 너무 많이 떠나셨다. 그러던 사이 뒤따라오던 후배들이 어른 노릇 제대로 못 하는 우리 세대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어른 노릇은 감당하지 못하지만, 이 책을 세상에 펴냄으로 우리를 따라오는 세대들에게 오늘의 우리를 가능하게 하신 어른들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소중한 책이다.

김기석 목사의 발문 마지막 부분이다. “세상이 어둡다.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어른들의 삶의 내력에 귀 기울이다 보면 희망이 있느냐는 물음 자체가 죄스럽게 여겨진다. 그들은 희망에 관해 묻지 않고 희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우리 앞에 별처럼 빛나는 존재로 우뚝 서 있다.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모름지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존재들이라면, 이들처럼 한번 살아보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서호석 목사와 함께 김정호 목사가 시무하는 뉴욕의 훌러싱교회로 갔다. 얼마나 많이 팔릴지는 하늘에 맡긴 채 귀한 출판기념회가 먼 곳에서 열렸다. 2018년 가을이었다. 우리 세 사람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야기했던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서평을 맡으신 조영준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목이 메어서 제대로 말씀을 전달하지 못하셨다. 이렇게 좋은 책이 나왔으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회마다 이웃마다 읽고 나누었으면 참 좋으련만.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박흥규 목사 고희기념문집, 신앙과지성사, 2008)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생각나는 분이다. 30여 년을 농촌교회에서 목회하며 60의 나이에 자원은퇴를 하고 본격적으로 대관령으로 나무를 심으며 수목신앙의 꿈을 키우시던 박흥규 목사님은 꽃피는 봄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이다. 벌써 박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7년이 된다.

박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8년 무렵이고 나에게는 감청시절이니 무척 오래되었다. 당시 나는 감청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생활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었고 그래서 사회과학 출판사였던 형성사에서 편집일을 보고 있었다. ‘감청회보’를 일간신문 크기로 격월로 발행했던 경험을 살려 출판사에 취직을 하면서 책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때 박 목사님은 40대 초반으로 김포 월곳교회를 담임했다. 공덕교회, 은강교회, 약수형제교회, 아현교회, 아현중앙교회가 감청운동의 베이스캠프였고 나는 공덕교회에서 청년부 후배들을 지도하는 교사의 입장으로 박 목사님을 찾아갔다. 학내 학생운동이 봉쇄되어 교단청년운동으로 청년 정신의 명맥을 이어가던 때다. 공덕교회 청년 30여 명을 데리고 열흘간 농촌봉사를 할 터이니 장소제공과 울타리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젊어서나 노인이 되어서나 친절한 구석이라곤 없고 표정부터도 쌀쌀했던 박 목사님은 청년들이 시골에 내려와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대상이었던 문제들도 잘 해결해 주셨지만, 저녁 늦은 토론시간에 오셔서는 청년들에게 핀잔에 가까운 말씀을 하곤 하셨다. “니들, 여기 왜 왔나?” “무슨 공부들 하냐?” “농촌교회의 현실을 말해 보라.” 등등의 말씀을 겉으로는 퉁명스러웠지만 속으로는 큰 사랑을 품고 말씀하시곤 했다.

사근사근하지 않던 박 목사님과의 첫 만남 이후 나와 박 목사님은 긴 시간을 (한 20여 년) 만나지 못하다가 송병구 목사가 독일 복흠교회에서 목회할 때 독일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10여 명이 보름간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박 목사님이 제일 어른이셨고 17년 차이가 나지만 다음이 나라서, 그와 룸메이트가 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그때 함께했던 일행들도 모두 박 목사님과 거리 두기를 하곤 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칠 때면 “야, 너 요새 무슨 책 보냐?” “공부 안 하고도 입질 잘하느냐?” “돈 벌려고 목회하냐?” 등등 까칠한 질문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는데, 나는 오지게도 보름을 한방 쓰면서 박 목사님의 까칠한 질문들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은 박 목사님이 정말 책을 사랑하고 공부를 많이 하셨다는 점이었다. 서양철학사에서부터 중세와 기독교 그리고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정말 박식한 면모를 지닌 분임을, 책벌레이심을 알게 되었다.

독일여행을 다녀온 후 박 목사님과 매우 가까워졌다. 인간적인 사귐이 있고 난 후부터 박 목사님은 동생 같은 나를 매우 존중해 주었고, 이 시대에 외롭게 출판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러면서 박 목사님은 나와 책을 통로로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대관령 숲속에서 주경야독했던 책들의 감회를 내게 전했다. 그래서 박 목사님 덕분에 나에게도 책에 대한 안목이 넓어졌고 나름 기획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이 책은 책벌레였던 박 목사님이 고희를 기념하기 위해 출판한 책으로 현재 우리 출판사에 달랑 한 권 남아있다.

“모든 것은 변화되고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머리글 제목으로 박 목사님은 자연과 영생의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번 경험했던 일들은 내 안에 존재하며, 영원한 과정에서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에서 대관령 산 생활을 기록한 일기와 관심사였던 수목신앙(樹木信仰)에 대하여 제1부를 정리했고, 제2부는 가까이 지내던 동료와 후배 16인이 인간 박흥규에 대하여 쓴 글을 모았다. 이 책 권두 대담의 진행과 정리를 내가 맡아서 박흥규 목사님의 살아온 과정을 서술해 드린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대관령 숲속에서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던 사람 박흥규 목사, 그의 빈자리가 내겐 너무 크고 넓다. 여린 가슴으로 대범한 척하셨으며, 남들이 슬슬 피하는 가시 같은 이야기로 후배들을 자극하려 했던 순전한 그분의 속내가 오히려 애처롭고도 가슴 아려온다. 이 책을 어루만지며 그가 살던 농막이 있는 대관령 옛길을 얼른 다녀와야 할 터인데… .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함께 사는 기적

 

 

(<함께 사는 기적, 프랑스 떼제와 신한열 수사 이야기>, 신한렬 지음, 신앙과지성사, 2017년)

1.
나도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기적이란 생각을 가끔 한다. 며칠 전 나와 가장 가까운 마나님이 출근길 운전하는 내게 심한 잔소리를 했다. 따로 다니는 게 참 편한데, 몸이 아프신고로 모셔다 드리는 출근길 한 시간이 참 길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나 이외의 사람에게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참 많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모두 떨어져 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고, 자식이든 친구든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말이 진실하게 들릴 때도 많다. 사랑으로 함께 하는 신앙공동체를 갈망한다며 수없이 기도하건만 교회 생활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데 함께 사는 기적을 일궈내는 현장이 있다. 휴가를 얻는다면 꼭 한 번쯤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참 예쁘고 아름다운 수도 공동체인데,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 떼제다. 유럽의 고풍스럽고 역사성 있는 교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아가고 있는 시점에서도 이곳은 세계 각처의 젊은이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오고 한여름에는 텐트 칠 자리도 없을 만큼 하루 3천 명 넘는 인원이 오간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단순하고 소박한 수도공동체인 이곳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찾아오는 것일까? 숙소도 여행을 위한 제반 조건도 그리 좋지 않은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왜 세계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명상하고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것일까? 이 책과 만나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신앙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2.
나는 떼제를 두 번 방문했다. 첫 번째는 20여 년 전 감리교연수원 프로그램으로 당시 이면주 목사님이 감리교 중견 목회자 십여 분과 젊은 세대로 나와, 엄일천, 정해선, 김성복, 고인이 된 김영범을 합류시켰다. 떼제는 최소 일주일은 머물 것을 권하지만 우리 일행은 한 닷새쯤 머문 것 같다. 지금은 대개 고인이 되신 목사님들과 젊은 우리는 그곳의 신선한 분위기와 자유로운 규범(하루 세 번 공동예배 외에는 프로그램도 없고 강요하는 것도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생활해야 한다)을 좋게 보는 듯하면서도 한국의 심령부흥회 등 한국적 기도원의 분위기에 젖은 나이 드신 목사님들은 적응에 힘들어하셨다.

그런데다 당시 한완상 장로님이 통일부총리가 되어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을 보이려고 하는 때라 그곳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은 대부분 이념논쟁에 시간을 소모하면서, 떼제가 추구하는 정신과 사뭇 반대되는 대화가 우리를 지배했다. 우리 일행은 한국인 수사로 서강대 학생운동의 리더로 민주화 과정에서 죽어간 박종철과 친한 친구이며 그의 죽음에 회의를 느낀 이 책의 저자 신한열 수사(이한열 열사와 이름이 같아 기억하기 좋았으나 아픈 이름이다)를 그곳에서 만났다. 지금은 60이 다된 나이이나 당시 앳된 얼굴로, 유일한 한국인 수사였다. 신 수사는 우리 일행의 양극화된 분위기를 잘 이해하면서 믿는 이들이 어떻게 땅의 소금과 화해의 누룩이 될 수 있는지를 안내했다. 또 떼제가 있어 소비와 경쟁, 분열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도 세계 곳곳에서 함께 사는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3.
나의 두 번째 방문은 존경하는 조화순 목사님을 모시고 갔다. 벌써 한 10년쯤 지난 일이다. 친구 이필완 목사가 동행하면서 조 목사님 시중을 나누어 들었다. 조 목사님 역시 이튿날까지 탐탁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하루 세 번 예배에 설교도 없고 성경 읽고 침묵하고 단순한 노래들을 기타반주에 맞춰 반복하는 것이 싱겁고, 젊은이들이 몰려들지만 구름 같은 것이고 현장성이 없어 문제라고 지적하셨다.

그런데 그 무렵 한국에 가 있던 신 수사의 배려로 3일째 되는 날 우리 일행을 수사들의 집에 초대하여 극진한 잔치로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알로이스 원장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조 목사님을 소개하고, 치하하니 조 목사님의 태도가 바뀌셨다. 또 떼제의 중심으로 예배처소인 ‘화해의 교회’에서 낮 예배가 끝난 후 알로이스 원장 수사가 조 목사님께 무릎을 꿇더니 안수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조 목사님도 흥분하셨고 신 수사가 계셨으면 일도 아니련만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통역을 감당했으니, 진땀이 나던 추억이다.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인 통역사 노릇이었다.

기분이 업된 조 목사님은 나더러 언제 그렇게 영어를 했냐 칭찬하시기에 내친김에 이웃어간에 있어 참 아름다운 소도시 끌로네로 모시고 갔다. 조 목사님과 잊을 수 없는 좋은 여행을 했다. 일주일 그곳에 머문 후 우리 일행은 독일로 향하여 존경하는 이영빈 목사님 댁을 방문했다. 김순환 사모님과 이 목사님 세 분이 부둥켜안고 울면서 만났고 헤어졌다. 3일을 함께 지낸 후 이 어른들은 우리 언제 또 만나냐? 하시며 작별하셨는데 이것이 이영빈 목사님과 조화순 목사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4.
신한열 수사의 『함께 사는 기적』,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뜻 깊게 느낀 것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이 실현된 현장이 떼제라는 점이다. 떼제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 중 유대인과 독일, 프랑스 전쟁포로들을 보호하면서 로제 수사가 시작하고 세워나간 모든 종교를 초월한 예수 사랑의 집이다. 거기에 그분의 섭리가 계셔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실망과 고뇌에 빠졌던 신한열이 로제와 만난 것은 역사 속에서 함께 사는 기적의 섭리라고 생각하여 큰 울림을 갖는다.

로제는 신한열을 신뢰하여 떼제가 소유할 수 없는(공동체든 개인이든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형제 중 누군가가 바친 큰 유산을 어떻게 쓰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신한열은 우리 북한 동포를 위해 쓰자고 제안했고 로제가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떼제의 북한 사랑의 손길이 펼쳐져서 두유 공장을 세우고 해마다 많은 양의 쌀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로제의 신뢰를 바탕으로 신한열은 유럽에서 대규모 젊은이 모임을 열고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 홍콩과 중국 등 젊은이들과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5.
예수 사랑과 가난의 정신을 배경 삼아 로제 수사가 걸어온 떼제의 여정은 귀중한 것이고, 신한열이 종신서약하고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과정에서의 사랑과 회의와 희망의 이야기가 이 책을 탄생시켰다. 떼제 수사로서 책을 낸다는 것이 쉬운 결심은 아니었지만, 나의 꾸준한 제안을 수용해 준 감사의 산물이다.

이 책을 보면 참 감명 깊은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어느 단체나 새로운 또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 법. 떼제 역시 신선한 사랑과 화해를 위한 많은 일을 하였으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새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신한열은 다시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또 다시 한국에서 함께 사는 기적을 일구려고 준비 중이다. 이 책을 다시 천천히 읽으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안내하고 있는 귀한 책이다.

최병천 장로(공덕교회, 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