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기독교사상] 한국교회 부흥의 아버지 하디가 살갑게 다가오다
월간 기독교사상 2013년 10월호 한국교회 부흥의 아버지 하디가 살갑게 다가오다
우리에게 한국교회 부흥의 아버지로 알려진 로버트 하디 선교사를 조명한 소설과 인물 탐구가 동시에 출간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한국 감리교회는 하디가 1903년 원산의 선교사 수련회에서 깊은 회개와 성령 충만을 경험했던 것을 기념하며, 지난 8월 18일 ‘하디 1903 성령한국 대회’를 열었고, 8월 24일에는 청년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대형집회 위주로 행사를 치르고 나면 뭔가 허전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이벤트에 머문 채 진정한 회개와 삶의 변화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교회 신자들이 하디를 잘 조명한 책 두 권을 차분히 읽고 성찰하면서 110년 전에 일어났던 부흥의 역사를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회개하고 재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 시인으로 익숙한 고진하 목사가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단지 문학적 상상력만으로 쓴 소설(fiction)이 아니라 역사소설(faction)이다. 저자는 방대한 책과 사료, 관련 사진뿐만 아니라 교회사가의 감수를 받아 부흥운동가 하디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잘 그려냈다. 책 표지에 실린 “새벽닭이 울 무렵이었다. 하디는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 수 없는 뜨거운 전율이 흘러내렸다. 거룩한 영이 임한 것이었다. … 그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의 입술이 저절로 열리며 감사의 기도가 쏟아졌다. 오, 주님! 티끌만도 못한 저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다니요? 주님, 주님, 오,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대목은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문학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 마치 1903년 원산 등의 부흥집회에 참석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심리적 묘사나 시대상의 표현이 탁월하다. 이번 소설을 계기로 도서출판 kmc에서 한국교회 중요 인물의 생애와 신학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재미있게 구성해 독자에게 다가가는 작업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는 “제 안의 비평가들을 짐짓 무시했습니다. 자칫 비평가가 너무 많이 개입하면 소설 주인공의 삶을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죄, 회개, 성령, 부흥 같은 언어들이 소설을 떠받치는 중심언어들입니다. 저는 이 언어들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하려 하지 않고 쓴 약을 삼키듯 그냥 삼켰습니다. 재해석은 오늘을 사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과 하디의 삶,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지금 여기에 살갑게 다가와 재현되는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뒤 우리 각자 스스로가 회개하고 부흥의 역사를 다시 써 나가야 하리라. 그동안 로버트 하디가 한국교회에 기여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학술적 연구는 미비한 편이었다. 하디가 교장으로 있었던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석사논문이 처음 나온 게 2012년 최요섭의 “하디의 생애와 신학 – 협성신학교 교수시절 신학세계 수록 논문을 중심으로”이다.
『소설 하디』는 1907년 평양 부흥이 시작되기 전에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이 하디를 강사로 초청해서 연합집회를 갖고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것으로 끝난다. 『로버트 하디 불꽃의 사람』은 하디의 선교와 부흥 그리고 신학을 다룸으로 초기의 선교 사역부터 부흥 사역 그리고 신학교와 문서 사역까지 전 생애를 망라해서 다룬다. 이 책의 특징은 관련 사진 자료가 풍부하고 주(註)가 없다는 점이다. 마치 소설을 읽듯이 쑥쑥 읽으면서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은 첫째 마당 로버트 하디의 선교와 부흥 그리고 신학이 장 구별 없이 연속해서 이어지고 둘째 마당은 로버트 하디의 설교와 에세이 모음으로 엮여 있다. 저자가 서술한 하디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신학을 읽고 하디의 글을 통해 하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편집한 것은 큰 장점이다. 물론 첫째 마당에서 직접 인용된 하디의 목소리를 다수 들을 수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이다. 하디를 통해 회개란 무엇이고 진정 회개하고 변화한 사람이 갖는 내적 힘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 깨닫게 된다. 원산 부흥에서 평양 부흥으로 이어진 부흥운동은 원산의 선교사 로버트 하디가 자신의 영적 능력의 결여를 정확히 인식하고 회개한 데서 출발했다. 하디는 보고서에서 자신이 강사로 참석한 사경회를 묘사하면서 자신을 ‘한 선교사’로 표현했다.(34쪽) 1903년 8월 24-30일 원산에서 화이트와 매컬리가 참여한 여선교사 기도모임이 열렸을 때, 여선교사들은 선교사 중 제일 고참인 하디에게 성경공부 인도를 부탁했다. 그는 성경공부 인도를 준비하면서 말씀에 자신이 없었고, 말씀 앞에 부끄러웠다.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발견했다.
그러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말씀을 전하는 중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평안이 솟구치며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게 됐다. 이 경험으로 인해 존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체험처럼 하디도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으로 바뀌게 된것이다.(39-41쪽) 자신의 체험을 선교사들과 토착 교인들에게 간증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체험을 하였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하디에게 요청한 것은 자신이 선교사로서의 생활에 대체로 실패했던 원인이, 자신의 결점과 믿음 부족, 그리고 선교비 유용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토착 교인들 앞에서 고통과 수치를 감수하며 자백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은 오직 성령이 임해야 가능했던 통회와 자복이었다. 이후 하디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으로도 아니요, 능으로도 아니며, 오직 주의 영으로!”(슥 4:6)라고 말했다. 주어가 ‘나’가 아니라 ‘성령’으로 바뀔 때 가능한 은총이었다.(41-42쪽) 저자는 회개의 마중물로 프랜슨 박사 집회 이야기를 소개하고 최종손, 지수돌, 진천수 등의 공개 자복이 ‘창피하고 비통한’ 것이었음을 말하면서 아픔과 슬픔, 수치와 고통이 담긴 자복이 참된 회개임을 말하고 있다. 진실한 회개는 고통을 수반한다. 하는 사람도 아프고 듣는 사람도 아프다. 그렇게 해서 흘리는 고통의 눈물은 내 안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과 기쁨,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끌어내는 마중물이라는 것이다.(48쪽) 저자는 회개와 중생과 성화를 ‘기독교 본질 체험’이라고 부르고 부흥회의 본질임을 밝힌다. 요즘 한국교회 부흥회의 단골 주제와 핵심이 되어버린 물질축복이나 기복신앙이 초기 부흥회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음을 언급하면서 한국교회의 번영복음을 비판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영적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삶을 살다 보면 부록처럼 따라오는 것이 육적(물질적) 축복이라고 강조한다.(51쪽) 저자는 회개의 결실로 양심전을 비롯하여 통회 자복, 용서와 화해, 배상과 보상, 거듭난 삶이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초기 부흥운동의 핵심이었음을 지적한다. 윤성근은 약 20년 전 인천 주전소에서 일할 때 봉급을 4달러 더 받은 일이 생각나서 4달러를 모아 하디에게 주면서 서울 정동의 탁지부에 돌려줄 것을 부탁한다. 하디를 통해 20년 전의 돈을 전달 받은 탁지부 관리가 의아해하며 영수증을 발급했는데, 이것이 한국교회 최초의 ‘양심전’이었다. 윤성근의 양심전 영수증은 한국교회의 강력한 유언장이 되어, 이후 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부흥운동을 통해 통회 자복하고 회개한 교인들이 회복된 양심으로 과거의 것을 보상하고 배상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67-69쪽) 이러한 삶의 변화를 통해 드러난 생활을 보고 그 사람의 믿음의 진위 여부가 판단되었다. 이 점을 보면 현재 한국교회의 윤리적 타락과 비도덕적인 삶이 얼마나 거짓으로 점철된 것이며 진정한 회개가 필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저자의 입장을 보면 제3의 관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선교사관과 민족교회사관을 넘어 제3의 토착교회사관을 한국교회 사학계에 제시하고 그 결과물을 쏟아놓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양하며 종합한 저자의 기독교 사회주의도 양쪽 모두와 ‘연결되면서도 구분되는’ 제3의 이념으로서 중재와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에서는 부흥운동과 민족운동의 관계도 부흥운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회사학자들과 부흥운동이 민족운동과 배치되어 비정치화를 불러왔다는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넘어 제3의 부흥운동이 민족운동을 촉진시켰다는 논증을 한다. 부흥운동을 통해 교회 지도자들의 영적 각성과 윤리적 정화가 일어났고, 이들의 영적 권위는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지도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양심전 운동’에서 보여준 것처럼 회개한 교인들이 고도의 도덕규범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반인들은 교회를 모범적 ‘윤리 공동체’로 인식했다. 그래서 일반 사회를 교회가 ‘끌어 나갈’ 수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일제강점기 기독교인들이 민족운동 선두에서 민족사회를 끌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예로 3.1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한 정춘수와 길선주, 그리고 부흥운동가로서 후에 민족운동에 투신하는 손정도 목사를 소개한다.(85-86쪽) 그동안 하디에 관한 연구가 그의 부흥운동에 치우쳤던 것에 반해 저자는 신학교 사역과 문서 선교 사역을 비중 있게 다룬다. 하디를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의 웨슬리 이후의 감리교 신앙과 신학의 전통, 즉 영성의 신앙과 이성의 신학을 잘 조화시킨 한국의 참 웨슬리안으로 본다. 신앙과 신학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때 순서가 중요한데 신앙이 먼저다. 저자는 “신앙이 내재하지 않은 신학은 허상일 뿐이며 신학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신앙은 허구일 뿐이다.”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저자의 글을 읽으면 날카로운 사실 규명뿐만 아니라 은혜로운 신학적 해석을 만나게 된다. 하디는 감리교 신학자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교파주의’의 포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에서 하나의 개신교회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자기 색깔을 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다. 교파 이름을 없앤 상태에서 예배와 설교를 관찰하고 분석한다면 교파 구분이 쉽지 않고 한국교회 모두 ‘순복음장로교회’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자기 교파의 본래 목소리와 색깔을 내면서 아름다운 무지개를 이루고 한반도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꿈을 꾼다. 존 웨슬리의 네 가지 신학적 기준은 성서, 전통, 이성, 경험이다. 이 책은 감리교 신학자로서 하디의 신학에 대해 양극을 지양하고 조화와 일치를 추구하는 ‘중용(via media) 신학’이라고 평가했다. 신학생들에게 엄격한 경건 훈련과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동시에 촉구한 것도 웨슬리 이후 감리교 전통의 맥락이라는 것이다. 한국 신학교의 교훈 속에 지향점이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 장신대는 ‘경건과 학문’이고, 한신대는 ‘학문과 경건’이다. 감신대는 ‘경건.학문.실천’이다. 문서 선교를 다룬 부분에서 하디는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책장 뒤지기에 전념하여 같이 번역을 돕는 동료들은 숨도 크게 못 쉬고 땀을 뺄 지경이었다는 조선예수교서회에 함께 근무했던 김춘배(金春培) 목사의 증언처럼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심정과 자세로 서회 편집실을 지켰다. 하디는 서회에서 근무하다가 연회에서 정년(70세)으로 은퇴하고, 한국 선교 45년을 마감하며 서울을 떠났다.(113-15쪽) 하디는 배우면서 가르치는 교수였는데 방대한 집필을 하면서도 겸손과 성실을 보여주었다. 그가 저술하고 관여한 저작들 중에 성서신학의 비중이 가장 많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디는 루터와 웨슬리처럼 ‘한 책의 사람’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서울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과 강의를 놓지 않는 아름다운 학자의 모습이었다. 그의 유언 같은 메시지 가운데 “사람이 씨를 뿌리고 풀을 매면 하나님께서는 단비와 햇빛을 주셔서 들에 곡식이 무르익게 하신다. 힘차게 나아가 거친 땅을 개척하라. 인간의 영광이 있나니”(202쪽)라는 말은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하디가 원산 부흥과 관련해 10년 터울로 세 번에 걸쳐 기록을 남긴 것에서 다시 부흥을 기대하려면 기도 외에는 길이 없다고 한다. 회개로 점철된 ‘다윗의 기도’로 시작하고 말씀을 더하라고 하디는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라는 말씀처럼, 말씀과 기도 외에는 자신을 깨끗이 할 방안이 없다. 말씀이 기도로, 기도가 말씀으로 서로 연결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사모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뿐이라고 본다.(120-21쪽) 한국사회로부터 기독교가 개독교로 지탄받는 이때에 이 책들을 통해 하디의 회개가 한국교회에 다시 한 번 촉발되어 한국교회의 전환점이 되는데 공헌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