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학의 역사에서 죽음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논의에 집중됨으로써 신학의 중심주제로 논의되기보다는 주로 기독교교리의 구원사적 테두리 안에서 부차적으로 논의되어왔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활신앙으로 말미암아 죽음과 죽은 자들, 그리고 죽음의 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은 죽음에 대한 성찰을 기피해왔다. 이러한 기독교 신학의 죽음 성찰에 대한 기피는 죽음을 배제하고 망각하는 현대 세계의 시대사조를 방관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작금의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빠른 속도로 배제되고 있다. 오락과 안락과 향락을 즐겨 하는 현대인은 죽음에 대한 성찰은 접어두고 오로지 삶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 역시 세속적인 삶의 흐름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세속의 흐름과 맞물려 현대의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시행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행위는 고통스럽고 불행한 임종, 비인간적이고 존엄하지 못한 죽음을 초래하고 있다. 고귀한 생명을 선사받은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존엄하게 생애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자살 및 고독사, 무의미한 연명의료 등으로 인해 불행하고 비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반생명적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발생하는 자살과 살인 그리고 각종 잔혹한 범죄로 말미암아 비인간적 죽음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은 전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는 실태도 거의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성숙한 죽음의식의 부재가 빚어낸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기피하고 금기시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많이 유연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죽음을 성찰하는 삶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죽음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잔존한다. 현대사회에서 죽음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제반 부정적인 현상들, 대표적으로 죽음을 삶의 영역에서 몰아내고 마치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죽음의 망각화’, 죽음을 공동체의 일이 아닌 개인의 사적인 일로 치부해버리는 ‘죽음의 사사화’, 죽음을 의료의 대상으로 바라봄으로 인해 임종기에도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집착하는 ‘죽음의 의료화’, 상장례를 상업적인 이벤트로 전락시키는 ‘죽음의 상업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결정이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죽음의 외주화’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담은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 안에 성숙한 죽음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외면하고 오로지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면서 엄청난 두려움 속에 죽어간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사랑하는 모든 것과 영원히 이별해야 한다는 슬픔과 함께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후세계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면서 대단히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인생 여정에서 접하게 되는 위기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지만, 정작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죽음의 순간에는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 곧 준비 안 된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죽음을 당하는 일처럼 인생사에서 참담한 일도 없을 것이다. 죽음은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이정표와도 같다. 따라서 우리는 삶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죽음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죽음을 깊이 성찰함으로 성숙하고 의미 있는 삶, 참되고 가치 있는 삶, 보람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죽음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는 일은 우리가 삶 속에서 반드시 행해야 할 인생 최대 과제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생로병사가 우리 인생의 참모습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성장하여 삶을 영위하다가 질병이나 사고 혹은 노화 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 삶에는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한계가 있기에, 죽음의 문제를 도외시하고선 우리 삶이 설명될 수 없다. 그런데 삶과 죽음이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 있다 하여,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결코 미화하거나 정당화해선 안 된다. 오히려 현실의 삶 속에서 억울하고 부당한 죽음을 초래하는 모든 불의한 세력에 적극적으로 대항해야 하는데, 이는 죽음이 역사의 마지막 때에 결국 하나님에 의해 폐기될 수밖에 없는 반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고전 15:26). 그러므로 죽음을 대하는 기독교 신학의 올바른 자세는 죽음의 양면성, 곧 죽음의 자연성과 비자연성, 생명의 자연스러운 종결로서의 죽음과 죄의 결과로써의 죽음을 직시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기운을 삶의 영역에서 확산시키는 일이다. 죽음의 자연성과 비자연성, 긍정성과 부정성에 대한 균형 잡힌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되면, 인생사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좀 더 성숙하게 감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의 자연성과 비자연성은 각각 나름대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우리가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종결로만 받아들일 경우, 자칫 온갖 형태의 잘못된 죽음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 또한 이와 반대로 죽음을 비자연적인 것으로 인식할 경우, 생명을 무한히 연장하려는 병리적 태도를 취할 수도 있고 또한 잘못된 죽음에 저항하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죽음 연구는 죽음의 양면성을 깊이 유념하는 가운데 한편으론 삶의 영역에서 자연적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고 생로병사에 순응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비자연적 죽음의 치명성과 그 폐해를 냉정히 직시하면서 불의한 죽음을 야기하는 세력에 저항해야 함을 역설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삶과 죽음에 대해 교육하는 생사교육의 의무화가 급선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교육을 중요하게 여겨 유치원 때부터 실시하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생사교육은 도외시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생사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삶의 마지막을 성찰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죽음의 질은 물론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10대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로 집계될 뿐만 아니라, 20대 대학생의 사망원인 1위 또한 자살로 거론되는 오늘의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학교의 정규교과 과정에 연계하여 생사교육을 시행함은 21세기 대한민국 교육계의 시대적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고, 신학계와 교회현장, 더 나아가 현대사회 전반에 팽배한 죽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일환으로 성서에 입각하여 죽음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이해를 제시한다. 이는 곧 죽음에 대한 비성서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 성서에 입각하여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 죽음을 넘어서는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참된 삶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원동력임을 일깨움으로써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삶의 마지막 여정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안에서 지혜롭게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독교 신학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신학자들, 특별히 죽음 이해와 관련해 중요한 공헌을 한 신학자들을 연구한다. 기독교 신학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신학자들의 죽음이해를 심도 있게 다룬 연구는 세계 기독교는 물론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아직 시도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연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물론 현대인들이 견지해야 할 올바른 생사관을 정립하여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그리고 죽음의 존엄이 구현된 사회를 이루는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영선 교수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문보기 https://goo.gl/Uw3p2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