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세워야 할 서른(而立)에 철없는 시골 전도사, 부목사, 첫 담임목사로 뒤뚱거리며 걸어왔습니다. 스스로 의심치 말아야 할 사십(不惑)에 매사 흔들리며 조심조심하며 사역했습니다. 하늘 뜻을 깨닫는다는 오십(知天命)에 자기 정체성과 사명의 본질을 붙잡고 험한 파도를 헤쳐 나왔습니다. 나이 육십(耳順)이 되었는데도 자꾸 남의 말이 귀에 거슬려 걱정입니다.
올해로 교회 설립 70주년을 맞이한 서울 장충단성결교회에 부임하여 10여 년을 사역한 박순영 담임목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린 시절 모교회인 제천중앙교회를 비롯해 첫 단독 목회지인 계전교회, 부목사로 섬겼던 조치원교회와 이리삼광교회, 담임목사로서 그를 성장케 한 줄포중앙교회와 서울교회, 그리고 지금의 장충단교회는 60세에 이르기까지 ‘삶으로 남긴 그의 이력서’라 할 수 있죠.
줄포중앙교회를 담임던 그 시절, 그는 전주의 호성신학교 학생들에게 큰 가르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분의 강의시간이 다가오면 동기생들은 무척이나 고대하고 또 고대했었죠. ‘수정’이나 ‘연화’는 마치 수줍은 새색시처럼 그분을 애타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늘 성심성의껏 강의를 준비해 오는 열정도, 만두에 들어 있는 속처럼 풍성한 강의 내용도, 강의 때마다 사용하는 언어들은 마치 고운 시를 써내려가는 것 같았죠. 그야말로 어머니가 끓여 주던 하얀 떡국처럼 달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내가 쌓아 놓은 한낮의 모래성들이 부끄럽기만 하여 슬그머니 주저앉아 버리고 어지러이 널려 있는 발자국들도 물거품에 수줍어 씻길 때,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담담한 모습이 즐거우려니. 나 떠난 다음에도 내가 떠난 빈 공간과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이들이 오래오래 나의 부끄러운 고백과 수줍음의 여운 속에 잠겨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살고 싶습니다. 지는 해가 아름다운 곳에서 지는 해처럼 부끄럽게 살면서 노을이 있는 행복을 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73쪽)
박순영 목사의 회갑(回甲) 기념집 <지는 해가 아름다운 곳>에 나오는 글귀죠. 30대에 서해 변산반도의 줄포에서 바라본 석양의 노을처럼 인생을 아름답게 갈무리하고픈 마음을 내비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만난 좋은 스승들, 동역자들, 친구들, 사랑스런 성도들, 기도와 신뢰로 두 팔을 붙들어 준 장로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엠마오 길목의 석양을 바라보며 함께해 준 ‘따뜻한 동행자’들이라고 고백하죠.
변산반도의 노을을 바라보며 “물이 창조주를 만나자 얼굴이 수줍게 붉어졌다”는 시인 바이런을 떠올린 이야기. 속초의 ‘실로암 막국수’를 먹고 ‘막국수 설교’를 연상했다는 사연. 부안에서 서울로 목회지를 옮겼을 때 5년 넘게 지하에서 살던 부교역자들의 집을 따로 마련해 주면서도 당신은 전셋집에 살았다는 사연. 그리고 그 교회로 이사할 때 선임 장로의 부인 권사가 “어려운 교회에 오시려고 하신다니 저희가 고마울 뿐이죠.”라고 따뜻한 격려를 받았는데,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 사연 하나하나가 읽는 이들의 코끝을 찡하게 할 것입니다.
이분의 감성 에세이집을 읽고 있자니, 요즘 새벽기도회 때 보고 있는 사무엘하 5장∼11장의 다윗이 떠오릅니다. 사무엘하 5장에서 다윗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왕이 되는데 그의 나이 37살 때의 일이었죠. 다윗은 6장에서 40년 가까이 기럇여아림, 곧 ‘바알레유다’에 머물던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고, 7장에서 법궤를 모실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이 성전을 지을 것이고, 대신 그의 시대에는 평안함과 함께 그의 왕위를 영원토록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죠. 하나님은 8장에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승리케 해 주셨죠. 그래서 다윗이 9장에서 사울 집안의 남은 자손인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고, 10장에서 군대의 총사령관 요압 장군이 거느린 군사가 암몬 왕 하눈이 거느린 용병 3만 3,000명을 격파하죠.
그런데 11장에 이르러 다윗은 엉뚱한 죄악을 저지르고 말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게 그것이죠. 그뿐 아니라 그녀가 임신하자 그걸 덮으려고 그녀의 남편을 불러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했죠.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았던지 결국 그 남편을 전선의 최전방에 보내 적의 칼에 죽게 했죠. 다윗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한 밧세바를,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이 자기 아내로 삼고 말죠.
다윗의 행적을 보면서 그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10대에는 시골 촌뜨기로 양치기하면서 자립정신을 키우고, 20대에는 왕으로 지명받은 후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자 삶을 살죠. 30대에는 이스라엘 전역의 왕으로 추대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40대에는 인생의 성공 가도를 달리기 위해 온갖 정열을 다 쏟아붓고, 그리고 50대에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그만 죄악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인생의 중년기를 아름답게 꾸려나가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죠. 다들 30대에 큰 뜻을 세우고 40대에 흔들리지 않고 성공가도를 달린다 해도 말입니다. 인생의 안정기인 50대에 다윗처럼 실수하지 않고 자기 정체성과 사명을 다하며 ‘아름다운 황혼 인생’을 수놓는다는 게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게’(잠 4:23)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리 크고 튼튼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힘없이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건물보다 꿈이 큰 교회, 교인보다 일꾼이 많은 교회, 목사의 리더십보다 성령의 능력이 강한 교회, 돈보다 기도의 힘을 믿는 교회, 유명한 사람은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 설교를 잘하는 목사보다 말씀대로 사는 성도들이 자랑스러운 교회, 종탑은 높지 않아도 믿지 않는 이웃까지도 좋아하는 교회, 이런 모습의 큰 교회를 이루고 싶습니다.” (205쪽)
교회의 힘은 세속의 힘처럼 크기와 숫자에 있는 게 아니라 깨끗함에 있다고 여기는 박순영 목사. 박 목사는 오늘도 그런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남은 인생을 다함없이 바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바다에서, 동해의 젊음을 지나 남해의 풍요를 이웃과 함께 나누다가 서해의 노을처럼 수평선 너머로 평안히 사라지길 바라는 그의 바람처럼, 그의 남은 인생이 더욱더 아름답게 노을지길 소망합니다. 샬롬.
권성권 기자 (littlechrist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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