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한국사회는 500년 전 독일에서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수도사 마르틴 루터의 재발견 작업이 한창이다. 10월 31일은 1517년 그날 루터가 비텐베르크성 교회문에 면죄부 문제를 따지기 위해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고 알려지면서 기념일이 된 날이다. 이를 앞두고 다방면에서 루터를 재조명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개신교 내부에서는 ‘이신칭의’, ‘만인사제론’ 등 루터의 신학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올해엔 중세의 문을 닫고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루터의 개혁 정신 자체에 주목하며, 500년 전 루터처럼 지금 한국교회의 시대적 개혁 과제를 살피고 그 답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독일교회가 한국에 파송한 이말테(루터대) 교수는 ‘서울에서 만난 루터’(신앙과지성사)를 내놨다. 그는 독일에 유학 중이던 아내 한정애(협성대 신학과) 교수의 모국을 이해하려고 5년 계획으로 한국을 찾았다가 25년째 뿌리를 박고 있다. 외부자인 동시에 내부인의 입장에서 날 선 비판을 하며 한국교회 곳곳을 찌른다.
이 교수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한국 개신교의 급속한 양적 성장기가 끝나고 위기에 처했다”며 한국교회에 종교개혁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는 ‘교단 내 금권선거’ ‘장로임직과 헌금의 상관관계’ ‘교회의 세습’ 등을 언급하며 “500년 전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됐던 성직매매의 현대판”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헌금이 예배 중 가장 중요한 순서로 느껴지고 교회 안에서 벌어진 갈등을 사회법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은 이미 본질을 잃어버린 기독교의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신학교육 개혁도 주문한다. 이 교수는 “종교개혁 시대 천주교회의 약점 중 하나는 성직자들의 낮은 교육수준이었다”면서 “지금의 한국교회도 일반 성도들의 교육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목사들이 더 많다”고 지적한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조명하는 각종 세미나와 포럼의 단골강사로 나섰던 그는 한글 표현에 능숙하지 못하다며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한국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지적엔 능숙함을 넘어 신랄함마저 느껴진다.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을유문화사)는 두 명의 교회사 전문가와 한 명의 기독활동가가 손잡고 기획한 책이다. 라은성 총신대 교수가 16세기 종교개혁 사건으로 시작한 개신교의 역사를 20세기까지 개관한다. 이어 이상규 고신대 교수가 복음이 전래된 이후 한국의 교회사를 훑어본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복음주의 연합운동을 펼쳐온 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가 현재 한국교회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이들은 서문에서 “개신교가 자화자찬의 미화에 갇히지 않고 자기성찰적으로 역사를 조명할 때 의미 있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종교개혁 시기에 화산처럼 분출해서 개신교의 시작을 촉발한 개혁 정신은 오늘날에도 심화, 재현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양 대표는 3부에서 1970년 이래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 세 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기존의 건물이나 장소에 갇힌 ‘고체교회’ 대신 새로운 대안의 모색을 촉구한다. 모이는 사람들의 관계 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액체교회’와 교회라는 외형은 약화됐지만 대신 사회 속에서 기독교 정신이 살아 숨쉬는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식의 ‘기체교회’ 가능성도 열어둔다.
박찬호 백석대 교수는 ‘개신교는 가톨릭을 이길 수 있을까?’(CLC)에서 목사이자 기독교 학자로서 솔직한 질문을 던진다. 루터를 통해 시작된 개신교가 종교개혁의 반동으로 자기갱신을 이어온 가톨릭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지를 노골적으로 다룬다.
그는 한국의 개신교가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이단이 횡행하는 현실 속에서 ‘이순신형 그리스도인’이 늘고 있다고 진단한다.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화살을 맞은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자신이 개신교인임을 감추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 가톨릭은 건재하다. 박 교수는 가톨릭의 특징으로 분란이 없고 이단이 없으며 가톨릭 특유의 영성이 보존돼있다고 말한다. 또 교구제도를 통해 불필요한 경쟁을 하지 않고, 평신도는 평등하며, 교리적인 폭이 넓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개신교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박 교수는 “가톨릭에 대한 적대주의로는 이기지 못한다”며 “자유를 강조하는 개신교 특유의 사상으로만 가톨릭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부패한 가톨릭을 개혁하고 종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루터 찬양 일변도의 평가에서 벗어난 책들이 눈에 띈다. ‘루터: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제3의공간)이 대표적으로, 루터의 공과와 16세기 종교개혁의 명암을 균형있게 따져보고 있다.
국내 저자로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가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21세기북스)에서 역사가의 관점에서 루터의 한계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박 교수는 “루터는 복음이 하느님(하나님의 가톨릭 표기)의 약속을 선포하는 것이지 사회의 윤리적인 갱신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루터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으며, 성경이라는 창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개신교가 가톨릭의 부패를 비판하며 그로부터 이탈해 독립한 지 500년이 지난 지금, 다수의 시민들은 한국에서 개신교보다 가톨릭이나 교황이 더 개혁적이라고 평가한다”며 “개신교가 과연 바른 교회를 건설했는지, 오늘날 종교에 요청되는 자리에 서 있는지 평가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기념만 하지 말고, 미완의 개혁을 완수하라는 다그침이 아프면서도 고맙게 느껴진다.
이밖에 김덕영 독일 카셀대 사회학과 교수의 ‘루터와 종교개혁’(도서출판 길)도 눈에 띈다.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종교개혁이 어떻게 서양에 ‘근대’를 각인했는지 분석하고 있다.
김나래 최기영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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