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을 말하는 책들이 종종 출간되고 있다. 2016년 5월 어느 날, 서울 한복판 강남역에서 특정한 연고 없이 여자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있었고, 헤어지자고 말하자 사귀던 연인을 죽이는 일도 있었다. 여성을 폄하하거나 혐오하는 사회로부터 남녀가 평등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돕고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염원에서인지 최근 들어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이 많이 발견된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독일의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 등이 눈에 띈다.
남자와 여자를 동일선상에서 보고자 하는 시도는 현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미 구약 시대에도, 신약 시대에도 있었다. 창조 이야기에서 신이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면서 그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말씀은 가부장적인 문화권에서 나온 구절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정신을 뛰어넘는,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매우 탁월한 메시지이다. 남자만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를 통해 남자와 여자가 동일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부각된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려는 책은 레너드 스위들러의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이다. 올해 ‘신앙과지성사’를 통해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어 새로운 책으로 소개되지만, 원래는 1971년에 나온 책이다. 1970년대는 페미니즘 신학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기에, 원서의 제목(Jesus was a Feminist)은 매우 도발적인 것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여성혐오 등을 고려할 때 이 책의 내용이 한국 사회와 교회를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 스위들러는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1966년부터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번역은 그의 제자 이성청 박사가 맡았다.
저자는 제1기 여성신학자라고 불려도 좋을 듯하다. 1970년부터 여성에 대한 예수의 태도에 관심을 가졌고, 그에 관한 저서들도 출간하였다. 이 책 외에도 『유대교의 여성: 전통적 유대교에서 여성의 지위』(1976), 『여성에 대한 성서적 인정』(1979) 등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후 이 분야에 여성 석학들이 등장함으로써 자신은 이 영역에서 물러났다고 진술한다. 당시 활발한 토론을 이어가던 여성신학자들과 함께 여성신학 영역에서 좀 더 활동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가 맨 앞부분에 결론을 적었다는 것이다. 성미가 급한 독자는 책을 읽을 때 맨 뒤에 있는 결론부터 읽는 경향이 있다면서, 뒤로 가지 말고 결론부터 읽으라고 친절을 베푼 것이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말하려는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2) 예수는 이혼과 재혼을 금기시하지 않았다. (3)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원형 사본들은 여성에 의해 기록되었다. (4) 여성들의 역할과 기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서론 부분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시기가 있다고 한 주장이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는 모두 남성이 주도하는 세상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사회는 남성 중심의 사회이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땅이 고대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중심에 있다고 본다. 초승달 지대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단으로 시작해서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이집트까지를 말한다. 특히 동으로는 수메르가, 서로는 이집트의 영향력이 컸다. 저자에 의하면 기원전 50-40세기의 이집트는 페미니즘 왕국이다. 딸은 아들과 동등한 상속권을 가지고 있었고, 중매가 아닌 사랑에 의한 결혼이 이루어졌으며, 남편과 아내가 평등한 일부일처제 사회였다. 기원전 2400년경 수메르에는 일처다부제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상당한 규모의 사유재산을 소유한 여성도 있었고, 주어진 노동에 대해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받는 법도 있었고, 공적인 영역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한 여성도 있었다. 그러나 차츰 바빌론, 아시리아의 세력에 편입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집트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3000-2270, 1580-1085, 기원전 663-기원후 375년 시기에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신약성서가 형성되던 헬레니즘 시대에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권리에 근접해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여성들에 대한 교육 덕분이며, 기원전 7세기 피타고라스도 여성 제자를 두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성의 평등권을 논했다고 본다. 또한 견유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모두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하였으며, 동방 컬트와 신비종교, 새로이 등장한 여성해방운동은 여성이 종교적 행사에 참여하게 하는 등 여성 평등과 해방의 주역이 되도록 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에 성서적 전통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지독히 불평등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여자에게 거룩한 문서인 토라를 가르치는 것은 창녀가 되게 하는 길이라며 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길에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만 해도 좋지 않게 여겼다. 이런 문화권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며 가르치고 살았던 예수의 삶과 사상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는 주장에 대해 필자도 이의 없이 동의한다. 예수가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여긴 역사적 흔적은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령 예수의 결혼과 이혼 이해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와 장애인, 죄인과 여성 등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누리게 하기 위해 보내졌다는 소명의식에서도 나타난다. 그리하여 예수는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제자로 삼아 가르쳤다. 질병이 있는 사람이나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할 때 남녀를 가리지 않고 했으며, 하나님 나라에 관해 가르칠 때에도 여성 청중을 고려하여 누룩 비유나 잃어버린 동전 비유 등을 들어 가르쳤다.
예수가 이혼을 긍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이혼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악한 행위로 본다는 해석이 우세하지만, 저자는 반대 입장에 선다.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 예수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예수는 하나님을 여성의 이미지로 묘사하기도 했으며,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특징 혹은 성품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위들러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들을 분석하면, 여성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의 저자가 여성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가 마리아이며 그가 바로 요한복음의 저자일 것이라는, 절대로 동의하기 어려운 추측성 발언을 하기도 한다. 예수의 활동 당시 많은 여성 사역자가 등장하는데, 십자가 앞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빈 무덤을 확인하였으며,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 중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이 크게 부각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여성이 없었다면 기독교의 형성과 유지가 불가했으리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의가 없다.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예수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유대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고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여 대화의 파트너로 삼기도 하고, 남성과 동등하게 여성을 치유하기도 하고, 제자로 삼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를 따르는 여성들도 많았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장례 장소를 확인한 것도, 빈 무덤을 목격한 것도,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 만난 것도 모두가 여성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예수 사후에 형성된 교회에서도 여성들이 지도자급으로 사역한 사실 등 다양한 성서적 전거를 제시한다.
가부장적 문화가 팽배하던 시대에 예수가 보여준 페미니즘적 성향은 가히 시대적 혁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신약성서의 자료를 통해 보여준 스위들러의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저자가 성서학자가 아니라는 점, 그의 주장 중에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저자가 여성일 것이라는 용납하기 어려운 가설을 제시한 점, 그리고 후에 여성신학이 치밀하게 발전하면서 스위들러의 소박하고 단순한 지적은 별로 인용할 가치가 없어졌다는 점 등이 그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스위들러의 책이 45년 이후에라도 우리말로 번역되어 읽힐 수 있다는 것은 예수의 사상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쁜 소식이라 하겠다. 대림과 성탄을 지나 해가 바뀌는 계절에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김판임 | 신약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바울과 고린도교회』 등이 있다. 현재 세종대학교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