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 전매하던 총독부, 개신교 금주운동 탄압”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마라/건강지력 손상되니 천치 될까 늘 두렵다/아 마시지 말라 그 술 아 보지도 말라 그 술∼.’
1963년 개편 찬송가가 나오면서 빠졌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자주 부르던 금주 찬송가다. 1942년 일제강점기에는 금지곡으로 삭제되기도 했다.
감리교 목사인 이덕주 감신대 교수(57·사진)는 최근 출간한 ‘이덕주 교수가 쉽게 쓴 한국교회 이야기’(신앙과 지성사)를 통해 “총독부는 담배와 술을 전매사업으로 벌였기 때문에 교회의 금주와 금연 운동을 재정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경제적 저항으로 여겼다”고 밝혔다.
이 책은 개신교가 조선에 들어오는 1870년대부터 남북 교회의 교류가 본격화하는 1980년대까지 60가지 사건과 인물을 통해 한국 교회사를 정리했다.
1874년 스코틀랜드에서 선교사로 온 존 로스 목사는 영어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평안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그 성경에는 “텬디 만물이 어드래서 낫너뇨?”처럼 평안도 사투리가 섞였다.
전삼덕(1843∼1932)은 1894년 미국 출신의 선교사 윌리엄 B 스크랜턴에게 방 가운데 휘장을 치고 세례를 받았다. 휘장 가운데 구멍을 통해 머리를 내밀면 물을 뿌려 준 것.
이 교수는 “이는 남녀 차별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사건”이라며 “여성들은 아무개 딸이나 ○○댁 등 이름 없이 살다 세례명을 통해 자기 이름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신교 일부 교단의 친일과 광복 직후 교회의 분열은 물론 자신이 소속된 감리교단도 비판했다. 두 명의 감독회장이 나와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감리교 분열의 역사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1966년 감리교는 무려 110차례나 투표를 하지만 감독 선출에 실패한다.
“요즘 감리교 사태는 교회의 자정 능력이 사라졌다는 증거입니다. 선거 과정을 보면 지연과 학연, 금권 등 그동안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초기 교회사의 복원이 현재 교회의 바로 서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초기 교회의 모습이 A 또는 B학점이라면 지금은 F학점입니다. 초기 교회의 순수함과 열정, 민족의식으로 돌아가야 오늘날의 교회가 제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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