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난지도 성자-人間 황광은

10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난지도 성자
人間 황광은
김희보(1권), 황광은(2권) 세트, 영암장로교회 엮음, 신앙과지성사, 2023

 

 

10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난지도 성자

(<인간 황광은>, 김희보, 신앙과지성사, 2023)

1.
난지도의 성자 황광은 목사가 다시 돌아왔다. 2023년 2월 19일, 영암교회는 매우 부산했다. 고 우신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예배가 열렸기 때문이다. 영암교회 신도들은 100년 만에 다시 오시는 담임목사님을 맞이하기에 분주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 관계자는 물론, 한국보이스카우트 연맹, 서울 YMCA, 삼동소년촌(서울 상암동 소재 황 목사가 개척한 사회복지 시설), 대광중고 동창회 관계 인사들이 점심 식사 이후에 줄을 이었다. 유상진 담임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예배 서두에서 이 교회 연합성가대원(약 100명은 될듯하다)이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르며 100년 만에 다시 오시는 담임목사님을 맞이했다.

제1부 기념식은 100세가 훌쩍 넘은 한국의 지성 김형석 교수께서 후배 황광은의 100년을 축하하고, 온화한 성품과 밝은 미소의 황 목사를 기억했다. 위의 소개한 단체의 관계자들과 친지들 10여 명이 줄을 이어 황광은을 추모했고 3시간 가까운 집회는 줄을 잇는 황광은의 사랑과 섬김의 이야기로 전혀 동요됨이 없이 진행되었다. 간단히 터져 나온 회중들의 박수와 웃음소리는 황광은을 더욱 그립게 했다.

특별히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와 단원들이 경례하면서 고인에게 봉사대장 훈장을 추서했다. 그의 차녀인 황은숙은 유족인사를 하는 동안 눈물을 계속 흘렸고, 그의 사위인 김정호 목사는 그 광경들을 카메라로 연신 찍어댔다. 그날 내 자랑스러운 친구인 김정호 목사(뉴욕 후러싱교회 담임)는 세 번의 주일 설교를 아침 7시부터 담당하여 이 행사에서는 순서 없이 사진만 열심히 찍어 마누라에게 노후가 편할 건수(?)를 하나 만들었다.

고맙게도 영암교회는 이 자리에서 이 책들의 출판을 담당한 신앙과지성사의 공로를 치하하는 감사의 꽃다발을 대표인 나에게 전해주었다. 다과회까지 마치니 저녁 7시가 훌쩍 넘었다. 53년 전에 돌아가신 담임목사를 이렇게 극진히 추모하다니, 이 행사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훈훈한 미담을 제공한 행사였다.

2.
이렇게 한국교회에 귀감이 되는 행사와 출판작업에 기여한 주역은 압구정동에서 오랫동안 ‘사랑의치과’를 운영하는 장지우 장로다. 장 장로님은 1년이 넘도록 원고를 넘긴다고 여러 번 전화했지만 노구를 이끄시고 쉽지 않은 일이려니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어휴, 80을 바라보시는 연세에 원고를 마련하시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겠나 싶어 2022년 추석을 앞둔 상쾌한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덕수궁 옆 ‘달개비’에서 반갑게 장 장로님을 만났다. 젊은이들도 쉽지 않은 원고 작업을 오래도록 하셨으니 그에 대한 치하의 뜻으로 좋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멀리 있는 김정호 목사의 장인의 원고이니 친구를 대신해서라도 대접하고픈 생각이 들었는데 장 장로님은 큰 배낭으로 한 짐 되는 원고를 내미는 게 아닌가! 하여, 아니 요즘 USB나 이메일로 원고를 주지 누가 이렇게 한 짐의 원고를 주느냐면서 살피니, 황광은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다 복사하여 수집한 것이었다. 와-, 이걸 어쩐다, 그러나 스승을 생각하시는 열정이 너무 값져서 즐겁게 식사하고 출판사로 모셔서 세월의 흔적이 고고한 원고 설명을 들었다.

장지우 장로는 대광중학교 1학년때 황 목사님을 만났단다. 곧 영암교회 담임으로 가셨는데 그분을 선생님으로 존경했기에 그 교회로 따라갔단다. 영암교회에서 10년 목회하시고 47세 너무 이른 나이에 황 목사님은 세상을 떠나셨고, 53년이 되도록 장지우 장로는 선생님 같은 담임목사님을 그리며 이 교회를 지켰다. 치과의사가 되어 어려운 이웃도 많이 돌보았고, 황 목사님의 호를 딴 우신장학회도 중추적으로 이끌어 왔는데, 이렇게 황광은 목사님께 영향받고 사는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그의 아들도 레바논으로 부인과 함께 떠나서 치과 진료 봉사를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예수의 사랑으로 짧은 생을 살다 간 황 목사의 정신은 이렇게 대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진정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의 칭송이 아니라 예수 사랑의 길이기에 老 장로인 장지우 장로의 열정에 우렁찬 박수를 보낸다.

3.
그렇게 시작된 이 책의 작업은 6개월이 넘어섰다. 잘 파악도 하기 힘든 악성(?) 원고를 입력부터 교정, 교열까지 다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치과의사로 바쁜 장 장로님이 군밤 봉투를 앞세워 출판사를 출입하는 횟수가 잦아들었다. 그때마다 추가되는 원고를 또 어딘가에서 찾아와 내미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마다 페이지는 바뀌고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고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책인데 첫권은 김희보 선생이 쓰신 『인간 황광은』을, 2권은 아동문학가요 수필가이며 능력의 부흥사였던 황광은 목사님의 동요, 동화, 수필, 설교를 모아 구성했다. 이 책이 예쁜 케이스에 나란히 담겨 품격이 있는 크리스천 홈을 빚내줄 것이라 믿는다. 짧고 굵게 산 한 성직자의 헌신적인 삶이 오롯이 담긴 책을 또 한 권 출판하여 기쁘다.

4.
현재 뉴욕 훌러싱교회를 맡아 좋은 목회를 하고 있는 김정호 목사는 나의 오랜 친구다. 광현교회 서호석 목사와 만날 때마다 우리 시대 어른이 없다, 의논드리고 고뇌를 털어놓고 상의할 어른들이 다 돌아가셨다고, 쓸쓸한 대화를 여러 번 나누었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여 나온 책이 <사랑하며 춤추라>이다. “그래? 그러면 우리가 이 어른들을 만나게 해 드리자!” 하고 예수의 삶을 살아낸 대천덕, 장기려, 원경선, 김용기, 조아라, 나애시덕, 황광은, 이현필, 여덟 분 어른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머리글을 김정호 목사에게 쓰도록 했다. 김 목사는 황광은 목사의 신앙과 삶도 썼지만, 이 책의 서문에서 “어른이 없으니 아이들끼리만 싸우는 사회가 되었다. 곁눈질에 익숙하거나 땅에 떨어진 것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위를 바라보면서 예수와 함께 사랑하며 춤추자”라고 말했다.

황광은 목사(1923-1970)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기쁘고 산파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에 출판인으로 긍지도 가지게 되어 감사하다. <사랑하며 춤추라>의 전체 발문을 써 준 김기석 목사의 말대로 황광은 목사님은 우리 인생의 표지판이다. 우리 인생을 제대로 견인한 표지판 위에서 신앙의 어른들과 함께, 황광은 목사님과 함께, 사랑의 춤을 추어 보는 인생을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랑의 시대 예수와 함께 걸어갈 때 용기를 주는 책이다.

최병천 장로(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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