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이야기
이덕주 지음, 신앙과지성사, 2009
1.
내겐 참 고마운 책이고 신앙과지성사에게는 불쏘시개 같은 책이다. 초판의 판권이 2009년으로 발행연도가 표기되었으니 그때쯤 나는 매우 지치고 피곤해 있었다. 외주 출판물에 의존해서 간신히 버텨오던 출판 사역을 더 이상 감당하기가 쉽지 않고 지루했다. 1987년에 주변 문서선교운동에 초석이 된다는 자부심으로 출발하여 당시로서도 20년이 훌쩍 넘었으나 그 시점에서 출판 사역을 접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몇 개월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감신으로 이덕주 교수님을 찾아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만 해도 이 교수님은 전성기였다. 숱한 책을 출판하고 여기저기 강연에 분주하여 이 교수님의 연구실이 있던 감신 뒤편의 오래된 빨간 벽돌의 옛 건물 ‘관회수교’ 3층 구석방은 늦은 저녁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힘이 없니?”
“형, 할 말이 있어왔어. 아무래도 출판을 그만두어야 할까 봐!”
불쑥 던진 내 말에 이 교수님은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구석 어딘가에서 원고 뭉치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복사 용지들을 한데 모아 제본한 허술한 책 뭉치였다. 손때가 듬뿍 묻은 듯한 책 뭉치 앞에는 흐린 큰 글씨로 “한국 감리교회 역사”라고 쓰여 있었다. “병천아, 이 원고를 잘 궁리해서 좋은 책을 한번 해봐, 내가 강의 자료로 삼은 것인데 꽤 소중한 자료니까 잘 될 거야.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여기서 그친다면 말이 되니?”
2.
이덕주 교수님의 격려의 선물로 받은 원고를 여러분들이 도움을 주고 토론했다, 당시 연세대 언더우드기념관에서 조교를 했던 홍승표 박사는 이 원고에 어울리는 귀한 사진들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딱딱한 교회사가 아닌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책 제목을 요구했다. 그리고 원고와 사진이 함께 잘 조화를 이루도록 편집과 제작에 신경을 썼다. 하여 본사의 기둥인 ‘쉽게 쓴’ 시리즈의 첫권이 된 셈이다. “이덕주 교수가 쉽게 쓴 한국 교회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 된 참 고마운 책이다. 감리교회에 관련된 원고가 많았지만, 제목을 한국교회 이야기로 보편화했다. 범위를 한국교회 전체로 넓히면서 누구나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에피소드 60개로 참신하게 엮었다. 그런데 한국 교회사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는 교회사 책이 탄생된 저녁, 큰일이 벌어졌다. 이 책 2,000부 초판을 받아놓고 책더미 위에 베니어합판을 올려놓고 퇴근했으니 망정이지, 사무실 위층에 수도가 터져서 아침에 출근해보니 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어떻게 만든 책인데 자칫하면 다 젖어 없어질 뻔했던 기억이 새롭다. 초장부터 큰 액땜을 하더니 이 책은 지금까지 만부가 넘게 나갔고 이제 아홉 번째 판을 다시 찍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필두로 ‘신앙과지성사’가 출판의 맥을 잡은 것이고 쉽게 쓴 시리즈로 여러 좋은 책이 뒤를 이었고 출판의 격을 높여 주었다. 어려운 형편에 용기를 준 효자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3.
표지 앞면에 이런 글귀가 있는데 이 책의 성격을 잘 말해 준다. “교회사를 민족사와 연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처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교회공동체가 풀어야 할 과제를 주시고, 그것을 풀어가면서 신앙의 상징과 성숙을 이루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는 교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때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다. 그런 지혜가 있어야 민족공동체가 처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가 ‘민족구원’이라는 선교의 궁극적 목적을 수행할 수 있다.” ‘복음과 교회 그리고 민족의 역사’라는 다소 거창한 머리글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알게 된다. 지금까지 나온 교회사 책 중에서 가장 출중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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