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기독교사상] 교회사 속에서 만난 영적 스승들과의 행복한 만남
월간 기독교사상 2013년 4월호 교회사 속에서 만난 영적 스승들과의 행복한 만남 Ⅰ. 들어가면서 그런데 문제는 ‘영성이란 단어의 홍수’ 현상이다. 여기저기에서 모두 영성이란 단어를 갖다 붙인다. 물론 모든 곳과 모든 것에서 왜 영성을 말할 수 없겠는가? 하지만 영성이란 단어의 분명한 이해나 깊이도 없이 유행 때문에 사용하는 경우를 적잖이 보게 된다. 이런 시류(時流)의 한복판에서 그리스도교 내에서 사용하는 ‘영성’이란 단어의 모호성은 ‘영성은 곧 신비주의’라는 오해를 낳기도 하면서 그 소중한 단어가 적절치 않게 사용된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무엇이 진정으로 바른 영성인지 그 분별이 어느 시대보다 절실한 때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 최근 서점에 나왔다. Ⅱ. 책에 대해서 저자인 이후정 교수는 교회사를 전공했으나 객관적인 사실들만 나열하는 단순한 이론적 방법론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사막교부인 안토니의 악취 진동하는 거처까지 포함 – 마다 방문하여 전해 내려오는 사건들을 현장에서 재구성해내는 ‘발로 뛰는 사학자’이며 영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꾸준히 교회사를 바라보는 그리스도교 영성사가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새벽 제단에 나가서 무릎을 꿇는 영성실천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영성의 홍수와 혼돈의 시대에 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한 성실한 입문서를 써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적임자일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내용은 2002년 봄부터 1년 동안 이미 기독교방송(CBS)에서 <영성의 삶>이란 방송을 통해서 그 내용과 가치가 ‘검증’(?) 된 바 있다. Ⅲ. 틀 살피기 오늘날 우리는 참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하는데, 초대교회 시대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세상의 신들을 부인한다고 해서 무신론자라고 불리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32쪽) 지금은 그리스도교가 적잖은 세(勢)를 가지지만 당시엔 오히려 소수였고 더 나아가 ‘무신론자’로 불리던 시절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폴리캅은 로마 황제 시저(Caesar)가 주(主)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고 화형대의 불 속에서 사형집행인의 칼날을 받으며 순교의 길을 걷는다. 저자는 이 부분까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서술하고 사도 바울의 “내가 매일 죽노라.”는 말씀을 접목시킨다.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죽음을 매일 묵상하고 기억하는 것의 전통이 바로 이 초대교회의 순교의 영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전한다. 그는 또한 오늘 이 시절, 이 땅에서의 순교의 영성을 고민하며 독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초대교회의 순수한 영성을 본받는 것인지를.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답을 교회사 속의 영성가들에게서 찾아내고 있다. Ⅳ. 내용 살짝 엿보기 우리 자매 죽음이 위에 소개한 글은 프란체스코가 죽음을 앞두고 그의 형제들에게 불러달라고 부탁한 <형제 태양의 찬가> 중의 마지막 절인 죽음에 대한 노래이다. 영성의 대가라고 하는 이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모습은 그의 삶과 다름이 없었다. 죽음조차도 그는 형제애와 자매애로 포용하면서 사랑의 극치를 실현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영성은 삶만 아니라 죽음의 자리까지도 포함한다. 계속해서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은 ‘영성’은 결코 교회 안에만, 주일에만, 살아 있고 건강할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성적 삶의 모습은 반복되는 예배의 자리(40쪽), 성찬, 그리고 세례의식(42, 43쪽)을 준비하며 자신의 신앙과 인격을 신앙으로 훈련하고 지도받음을 통해서 시작됨을 분명히 한다. 이 책이 견지하고 있는 ‘균형감’은 여기서 빛난다. 영성을 단지 ‘이상하고 신비한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출발점을 예배와 교회의 전통의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저자는 초대교회가 행한 두 가지 전통의 부활을 오늘날 교회에 적극 추천한다. 하나는 등불예배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식사(아가페)이다. 등불예배는 토요일 저녁에 교인들이 등불을 가져와서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며 빛이신 그리스도를 송축하고 기억하던 예배이다. 아가페는 단순한 애찬이 아니라 예배의 연속이었고,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떡을 떼었던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본받는 절제의 식탁이었다. 빛이 너무 휘황찬란해서 밤에도 하늘의 별빛을 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영성에 귀한 자극이 될 것이다. 또한 세상적인 잡담과 먹는 데만 치중하는 식사가 아니라 절제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감사로 가득 찬 식사는 ‘주의 사랑으로 연합된 친교’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우리의 영성을 더욱 풍요롭고 풍성케 할 이러한 제언들로 풍성하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남을 비난한다. 그런 사람은 끊임없이 지껄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하지만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94-95쪽) 그분은 우리의 옷입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 우리를 감싸주시고 붙드시며, 결코 우리가 그냥 가도록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175쪽) 그리고 다음 글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다루어진 여성 영성가인 노리치의 성 줄리안의 하나님 고백이다. 그는 우리가 마치 옷에 싸이듯이 하나님에게 포근히 싸여 있는 존재임을 전하고 있다. 그의 영성은 본문에서 여성성과 신비의 관계가 하늘의 계시와 연결되어 아름답게 드러난다. 인도에서 태어난 힌두교 출신의 사두 선다 싱을 다루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그를 서구 중심적인 그리스도교를 서방의 옷이 아닌 동양의 풍토에서 받아들이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따라나서는 구도자로 소개한다. Ⅴ. 통찰과 유익함 우리가 영성의 길을 걸으려면 영적 모델이 필요한 데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모델을 발견하고 만날 수 있다. 영성의 길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고귀한 자기성취나 어떤 가치의 실현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 길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응답이 서로 만나고 합하여 사랑의 목표를 향해 진보해 나갈 수 있는 여정임을 알 수 있다. 영광의 신학, 번영의 신학이 범람하는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고난과 자발적 가난의 영적 전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복적인 기도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그 모범을 보여준다. “가장 좋은 기도는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 안식하면서, 그 선하심이 우리의 필요의 가장 낮은 깊은 곳들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178쪽) Ⅵ. 제언 마지막으로 ‘쉽게 쓴’ 시리즈라 그럴 수도 있으나 그 영성가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진 독자들을 위해서 참고도서가 조금이라도 소개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Ⅶ. 나오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한 행복과 기쁨을 누렸다. 소란하고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서 책을 펼치면 어느 순간 영성의 대가와 함께 하나님의 정원을 거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정원 곳곳에 자리한 다양한 나무와 꽃들을 옮겨다니며 얼마나 즐거웠던지. 나의 이해도가 내용의 심오함과 그 깊이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저자는 어느새 나타나 친절하게도 자세한 안내와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이 책을 손에 잡아보면 이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지 싶다. 끝으로, ‘쉽게 쓴’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출간해내는 신앙과지성사의 최병천 사장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조성환/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과 미국 웨슬리신학대학교(Wesley Theological Seminary)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현재 서울 수색의 혜성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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