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뉴스] 신성남 칼럼 “왜 눈떠야 할까” 잠 깨어보니 여기가 ‘하나님 나라’
▲ <왜 눈떠야 할까> 김신일, 민영진, 이만열 외 16명 지음 / 이덕주 이필완 장석근 이천진 박정인 홍이표 홍승표 기획 / 신앙과지성사 펴냄 / 335쪽 / 15,000원
이 세상에서 제일 겁없는 동물은 ‘하룻 강아지’라고 한다. 호랑이나 사자를 만나도 떨지 않는다. 태어난 지 고작 하루이니 도대체 뭘 알아야 떨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그런데 그보다 더욱 용감한 존재가 있다고 한다. 바로 ‘눈먼 사람’이다. 이번에는 눈에 뵈는 게 없으니 겁날 것이 없단다. ‘본 회퍼’ 목사의 옥중서간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것,내가 매맞는 것,내가 죽는 것, 이것이 그리 심한 고통은 아니다. 나를 참으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다. 그들은 정확한 진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댓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도시가 초토화하고, 꽃다운 젊은이들이 총알받이가 되고, 무고한 노약자와 아이들이 굶주렸고, 나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빚더미에 주저 앉았다. 북극의 얼음이 좀 녹든 말든 그게 내 가족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지지리 못 살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여지없이 부자당에 몰표를 주는 사람들, 언론의 자유가 막장 수준으로 뒷걸음쳐도 경제성장률만 따지고 있는 사람들, 북한 주민의 고난을 보면서 인권만 따지고 있는 사람들, 교회 갱신을 위한 비판을 교회 공격으로 매도하는 사람들, 목사도 우리처럼 연약한 인간이니 횡령해도 그냥 두자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새끼는 끔찍이 위하면서도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는 누가 굶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과연 누가 이들의 눈을 멀게 했을까. 주객이 바뀌고,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고, 가짜가 진짜를 핍박하고, 짝퉁이 진품을 대신하고, 성직자가 부자인 사회는 슬픈 사회이다. 탐욕이 자연을 파괴하는 세상, 돈이 의를 멸시하는 세상, 권력이 진리를 조롱하는 세상,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약탈하는 세상, 그리고 있는 놈들이 더 무서운 세상 그것은 결코 기독교인이 추구하는 세상이 아니다. 떡 9개를 한 놈이 다 먹고, 남은 떡 1개를 아홉 사람이 나누어야 하는 사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세상이다. 그럼에도 배부른 지도자는 거짓을 말하고, 눈먼 선지자는 평안을 노래하고, 그리고 무능한 장로와 안일한 집사는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백성의 상처를 위로하지 못 하니 오락과 스포츠와 드라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정의이고 섬김인지 교회는 보여주지 못 했고, 어떤 설교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아 고작 만사형통과 만수무강만 늘어놓고 있다. 그러니 이래도 교회가 쇠하지 않고 교인이 줄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기적이다. 왜 잠만 자는가. 이제 눈을 떠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신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라고 분명히 증거했다.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저 높히 구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역사하는 곳에 임재한다. 따라서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단지 율법책과 교회당 속에만 가두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중세적 세계관일 뿐이다. 그런데 제 아무리 용맹해도 ‘돈키호테’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먼저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잠만 계속 자면 결국은 누군가에게 속게 되는 법이다. 이제 눈을 크게 뜨고, 성경을 보고, 하늘을 보고, 세상을 보고, 그리고 역사 속에 장엄하게 흐르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보고 직접 그 잔치에 참여하여 놀라운 감동을 함께 누리자. 지금 내가 실존하고 있는 이 시대의 주인공은 아브라함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다윗도 아니고, 베드로도 아니고, 또한 담임목사님도 아니다. 내 인생의 주연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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