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제목이 ‘서울에서 만난 루터’다. 어떤 의미인가.
쉽게 말하면, 내가 서울의 루터가 될 수도 있다. 한국 개신교회는 루터 사상과 거리가 있어서, 내가 계속적으로 루터 사상을 말해야 하는 입장이다. 나는 루터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한국교회에 특별히 루터가 귀하니까 루터를 말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계속 루터 사상을 말하니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루터를 만나는 것 같다. 또 한국 사회나 교회 안에서도 루터와 종교개혁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있다.
– 한국 생활을 다룬 에세이가 책 초반부에 나온다. 그중 장인이 임종 전 “천국에 가니 걱정하지 말아라”고 말한 뒤에 “만약에 천국이 있다면”이라고 덧붙인 데서 ‘깊은 영성’을 느꼈다고 이야기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천국을 흔들림 없이 확신하는 것을 좋은 신앙이라고 말하지 않나.
하나님을 정말 깊게 이해하게 되면, 자기 생각이나 자기 상상의 한계를 알게 된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이 “내가 하나님을 안다”, “확신한다”라고 표현한다. 진짜 하나님을 깊게 이해하는 사람은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모른다”, “하나님만 알아도 괜찮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지 몰라도 하나님을 신뢰한다”라고 표현한다.
장인에게는 이런 태도가 있었다. 천국에 대한 상상 때문에 위로받는 것이 아니었다. 장인에게는 하나님 자체가 바위였다. 믿음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구별하는 것이다.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이야기하는데, 예수는 자기 자신을 항상 하나님과 구별했다.
구별하는 것에서 예수의 신성이 나타난다. 우리는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절대적인 것은 하나님만 안다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을 구별해야 한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일반 사람이 모르는 뭔가를 알게 되는 것을 믿음과 연결 짓는다. 나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잘못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외부인 시선으로, 책에서 한국교회 내 유교 질서를 비판했다. 한국에서 25년을 살았는데, 유교 문화와 관련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교회 내 위계질서였다. 교회 지도자가 넓은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권력을 막 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내가 (독일) 교회에서 경험했던 지도자는 수준이 가장 높고 부드러우며, 넓은 마음에 깊은 이해심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더라. 권력 중심적 모습이 심각하다. 거기에 실망했고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그리스도교에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대로 복종만 하는 모습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유교 문화가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도 있다. 유교 철학은 사회를 든든하게 하거나 안전하게 하기도 한다. 갈등을 피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조직 폭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유교 질서는 문명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점차 유교 질서가 약화하고 있다.
처음에 복음이 어느 나라에 들어오면 토착화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라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단계 시스템으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선교 우선 단계다. 이때는 복음이 문화화하고 토착화해야 한다. 둘째로 에큐메니컬 단계에서는 복음이 문화를 변화시킨다. 문화가 복음을 변화시킨 만큼 복음이 문화를 어느 정도 변화시키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두 번째 단계로 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교 질서 대신 기독교 윤리를 강조하고, 사회를 복음화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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