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파울로 프레이리

 

 

<파울로 프레이리 신학·영성·신학>, 제임스 D. 카릴로, 드릭 보이드 지음, 최종수 옮김, 신앙과지성사, 2021

내가 감청 시절이니 1980년 전후가 되겠다. 암울하고 잔혹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지배했던 시대다. 웬만한 책은 다 ‘판금’ 처분을 받았다. 비판적이거나 정권에 도전하는 내용들의 책들은 다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혔고 판금 처분을 받은 책들은 서점판매와 유통이 불가했다. 만약 어길시 치도곤이를 치렀고 심하면 감옥행이었다. 판금 처분을 받았던 책들 가운데 이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하여 얼마나 좋은 책들이 많았었나? 소위 ‘판금’ 책들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던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았었나? 그러므로 정권의 통치 차원에서 행했던 판금 정책은 오히려 선을 구축하게 한 악화의 정책이었으리라.

그중의 한 책이 있었다. “페다고지, 페다고지”란 말이 우리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다. 마치 ‘페다고지’를 보지 못한 사람은 대화에 낄 수도 없고, 약간 저급한 지식을 취급을 받았었다. 순식간에 영문판 복사본이 나돌았다. 하여, 나도 저급한 지식인 청년 취급을 받지 않으려고 복사본을 몰래 구입했다. 그런데 영어를 잘 못하는 까막눈인 나는 답답할 수밖에. 그런데도 아닌 척하면서 다른 책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가지고 다녔다. 만남의 장소도, 집회 장소에도 그랬다. 제일 위에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피억압자의 교육학(Pedagogy of the Oppressed』를 올려놓고 폼을 잡았던 웃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미국감리교회(UMC)에서 은퇴하시고 틈만 나면 산속을 헤매면서 버섯을 찾아다니시고 그 무수한 가짓수의 버섯들을 공부하려 애쓰시는 최종수 목사님이 내게 불쑥 찾아오셨다 (물론 최 목사님은 한국 방문 중에는 꼭 신앙과지성사를 찾으셨다.) 오시자마자 하시는 말씀, “최 장로님, 내가 펜실베이니아 대학 구내 서점에서 너무나 반갑게 만난 책이에요. 이 책 번역할 테니 무조건 출판해 보세요.” 잊었던 파울로 프레이리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감청 시절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페다고지’를 들고 다니며 억압의 역사와 한 맺힌 사건들을 많이 해소했지 않았던가? “그럼요, 목사님! 얼른 가셔서 번역하세요. 저는 중개사를 통해서 이 책 저작권 신청부터 해 놓을게요.”

80세가 다 되시는 노구를 달래며 최 목사님은 2021년초 겨울부터 여름이 찾아올 때까지 긴 시간을 파울로 프레이리와 씨름했다. 명저를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고행길인가? 그리고 나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네덜란드의 원서 출판사와 씨름했다. 로열티가 너무 비쌌다. 그래도 어찌하랴 청년 시절 파울로 프레이리 선생님을 앞세워 품잡고 다닌 죄려니. 그렇게 6개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원고가 도착했고, ‘신앙과지성사’가 3개월 편집 작업하여 정말 귀중한 책 『Paulo Freire, His Faith, Spirituality, and Theology』가 한국에서도 탄생하게 되었다.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세계적인 교육철학자요, 『페다고지』의 저자로만 알려져 왔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만났고, 성서를 통해 예수의 영성을 깨닫고 체험했으며, 그것을 근간으로 세계적인 교육학의 대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숨겨진 일 비슷하게 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하여, 내가 이 책을 고집스럽게 앞뒤 계산도 하지 않고 무조건 이 험악한 한국의 출판시장에 내놓으려고 하는 큰 뜻은 『페다고지』는 ‘예수의 교육학’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가톨릭 신자였으나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학의 대가이기 이전에 민중과 함께 민중과 나란히 했던 크리스천 영성가란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나의 이런 갸륵함이 이 책 속에 숨어있다.

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리에 남영숙 목사님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한국에서 프레이리를 가장 잘 소화하고 있는 유범상 박사(한국방송통신대 교수)를 소개하고 추천사를 쓰게 했다. 내친김에 나도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글에 감탄하여 직접 편지를 보냈다는 부산 샘터교회 안중덕 목사(교육학 박사)에게 추천사를 부탁하였다. 이 책이 호평받으려니 넘어져도 풀밭이라 했던가?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할 무렵 프레이리 박사의 강연을 브라질에서 듣고 아직도 그 영향을 받아 『엘 까미난떼』를 쓴 우리 출판사의 필자인 홍인식 박사가 자천하며 추천사를 집필해 주어 더욱 멋진 책이 되었다.

이 책이 더욱 빛나는 것은 프레이리 박사의 부인인 니타(Nita)박사의 머리말이다. 그녀는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그를 잃은 아픔이 자신에게 진정한 기쁨으로 다가오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면서 프레이리의 삶과 사상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프레이리의 외면당했던 그의 믿음과 영성이 이 세상에서 가난과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할 것을 소망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이 출판되는 날이 프레이리의 탄생 100주년(1921.9.19.)이 되는 날이라서 더욱 기쁘다. 독자들과 이 좋은 책을 함께 나누기를 염원하면서 핵심 목차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1. 영성과 파울로 프레이리
2. 부활체험: 민중에로의 회심
3. 희망, 역사, 그리고 유토피아
4. “사랑의 우물”에 기반을 둔 사람
5. 진정성 있는 삶을 산 겸손의 사람
6. 해방신학에 남긴 프레이리의 발자취

최병천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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